[한마당] 판사들이 결정할 미래

입력 2025-01-18 00:40

헌법재판소의 의지는 확고해 보였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대리인단이 제기한 재판부 기피와 기일 변경 요청을 모두 기각했다. 시간 끌기를 용인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탄핵심판의 엄중한 절차는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공정성과 국가적 혼란을 최소화할 신속성을 함께 충족해야 한다. 그것을 시작한 헌재가 택한 입장은 ‘공정을 기하되 신속을 양보하진 않겠다’는 것이다.

이런 기조를 조장한 것은 정치였다. (야당의 반대를 위한 반대 탓에) 재판관 6인 체제로 탄핵심판을 할 뻔했던 상황과 (여당의 권한대행 임명권 딴지에) 8인 체제를 만드는 과정의 험난함을 겪었던 헌재로선 재판관 2명이 퇴임해 다시 정족수 문제가 불거질 4월이 두려울 수밖에 없다. 그때까지 결론을 내리지 못해 벌어질 혼란과 책임을 맞닥뜨리지 않으려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탄핵심판은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빠르게 진행될 듯하다.

헌재의 행보는 법원의 속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윤 대통령의 운명이 헌재에 달렸다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명줄은 법원이 쥐었다. 12가지 혐의로 5개 재판을 받는 이 대표는 선거법 위반과 위증교사 사건의 2심을 앞두고 있다. 1심에서 유죄로 판결된 선거법 위반은 현행법상 2월 15일까지 2심, 5월 15일까지 확정 선고가 내려져야 한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 와중에, 또는 그 결과에 따른 조기 대선 도중에 ‘이재명 판결’이 나올 것으로 많은 사람이 예상하고 있다. 재판 진행 속도에 이렇게 정치적 잣대가 드리워진 터라 서울고법은 이재명 2심 재판부에 다른 사건 배당을 중지했다.

한국 정치의 보수와 진보, 정부와 국회를 이끌던 두 지도자의 정치 생명을 모두 판사가 좌우하는 상황이 됐다. 법이 결정하게 됐으니 누군가는 ‘법치’라 우길지 몰라도 이런 게 ‘정치’는 아닐 것이다. 망가진 정치에 나라의 미래를 사법에 의탁하는 신세가 됐다. 어차피 이리 된 거, 이참에 새 판을 설계하는 것이 차라지 낫지 않을까 싶다.

태원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