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부정하며 할말만 한 尹 “비상계엄, 국가 위해 행사”

입력 2025-01-16 18:36 수정 2025-01-17 00:26
오동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16일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공수처로 출근하고 있다. 공수처는 이날 윤석열 대통령을 상대로 2차 피의자 조사를 하기 위해 출석을 요구했으나 윤 대통령은 불응했다. 과천=윤웅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조사 당시 “비상계엄은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으로, 국가를 위해 정당하게 행사됐다”고 진술한 것으로 16일 확인됐다. 대통령의 고유한 권한에 따라 당시 상황을 ‘전시에 준하는 비상사태’로 판단했으며, 국헌 문란이 아닌 수호의 목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기존 주장을 반복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전날 공수처 검사의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조서 열람과 날인도 거부했지만 스스로 이같이 짧은 입장을 밝혔다. 또 “계엄 선포 행위는 판·검사가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고 한다.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의 권한에 따라 정당하게 이뤄진 것이며, 사법심사의 대상이 아닌 통치행위라는 논리다. 윤 대통령 측은 전날 피의자 신문에 대해 “아예 답변하지 않은 것이 아니고, ‘요약 설명’을 했다”고 국민일보에 밝혔다. 윤 대통령의 이 진술은 조서에 기록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이란 진술 속에는 비상계엄 선포 요건인 ‘국가 비상사태’ 여부를 판단할 사람은 오직 본인뿐이라는 윤 대통령의 주장이 담겨 있다. 윤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의 잇따른 고위 공직자 탄핵소추, 정부 예산의 무차별적 삭감이 국가 기능을 마비시켰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었다. 이 같은 행정부 마비 상태는 전시·사변이 아니더라도 ‘전시·사변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에 해당하며, 이 해당 여부는 본인만이 결정할 수 있다는 의미의 진술이다.

‘국가를 위해 정당하게 행사했다’는 진술에는 윤 대통령이 내란죄 구성 요건인 ‘국헌 문란의 목적성’을 부인하는 취지가 들어 있다. 공직자들의 무더기 직무정지와 예산 삭감이 국가에 미칠 해악은 이를 바로잡으려는 비상조치의 해악보다 크다는 주장이다. 윤 대통령 측은 ‘비상계엄은 헌정 파괴가 아니라 오히려 헌정 수호’라는 주장을 수사와 탄핵심판 대응의 기본 전제로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그간 담화에서 “망국적 상황을 호소하는 불가피한 비상조치였다”고 밝혀 왔다.

공수처 검사의 질의에 답변하지 않고 스스로 ‘요약 설명’을 남긴 것은 ‘공수처 수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윤 대통령 측은 거듭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전날 조사 때 내란죄 수사권이 없는 공수처가 법이 지정한 관할인 서울중앙지법이 아닌 서부지법에 체포영장을 청구한 데 대해서도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 측은 “영장 집행 형식을 갖추긴 했지만 결국은 대통령이 임의출석하는 결단을 내린 것”이라는 입장도 고수하고 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