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새해에는 미술관에 가자

입력 2025-01-17 00:32

이건용 화백 작품서 받은 감동 억압당한 시대 예술인의 기품
나라 걱정하는 순수한 마음이 상대 배척하는 갈등 부르기도
서로 다른 생각에 귀 기울이며 삶을 풍성케 하는 경험 나눠야

이건용 화백을 6년 전 인터뷰할 때 ‘신체항’(사진)을 사진으로 처음 봤다. 팔다리 잘린 토르소 같은 나무둥치가 콘크리트 섞인 흙 위에서 우뚝 서 있는 설치미술 작품이다. 높이가 2m50㎝다. 1973년 파리 비엔날레에 출품했다. 이 화백은 “파리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고 했지만, 사진으론 잘 와닿지 않았다.


50년 만인 2023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1960~70년대 한국실험미술전에서 이 작품이 실물로 등장했다. 전시관에서 한참 멈춰 서서 바라봤다. 뿌리와 둥치만 남은 나무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감동이 다가왔다.

미술관 가는 길은 늘 설렌다. 어떤 작가가 어떤 통찰력을 갤러리에 펼쳐 놓았을까 기대감이 솟구친다. 널찍한 공간에 사려 깊게 배치된 작품을 직접 마주하면 사진이나 영상으로 볼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생동감이 느껴진다. 상상력과 감각을 자극하는 작품을 만날 때면 생의 의욕까지 살아난다.

미술가들은 한 사회의 미래를 예감하고 표현하는 이들이란 생각이 든다. 미술도 협업이 필요하긴 하지만, 여러 사람의 참여로 이뤄지는 공연예술과 다르다. 미술가는 좀 더 고독하기에 자유롭고, 그래서 더 다양한 메시지, 더 과감한 표현을 시도할 수 있는 것 같다. 남다른 예지력을 담은 작품을 만날 때면 혼자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즐겁다.

이 화백은 신체항을 “제도적 공간인 전시장 안에 이 세계의 신체인 나무와 흙을 가져와 예술의 확장을 시도했다”고 설명했다. 예술과 예술품의 정의에 질문을 던졌다. 기자 나부랭이는 맘대로 해석했다. 말도 그림도 몸짓조차도 억압당했던 시대에 잃을 수 없는 예술인의 기품을 담은 저항의 작품이라고. 중구난방 대환장의 소셜미디어 시대다. 나 같은 기자들은 여기저기서 더 많은 눈치를 코치 받는다. 그래서 이 화백의 ‘신체항’이 더 와닿았는지도 모르겠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서울 여의도 국회 앞, 광화문 광장, 재동 헌법재판소,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까지 거리 곳곳에 많은 이들이 모였다. 태극기 집회에도 가보고, 응원봉 집회에도 가봤다. 여러 생각이 스쳐 갔다.

간혹 자극적인 언행으로 무장한 유튜버들도 보였지만 대부분이 평범한 시민들임은 분명했다. 자기 주머니에서 핫팩과 간식을 꺼내 나눠주며 미소를 건네는 소박한 이웃 사람을 만났다. 나라를 걱정하고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이 느껴졌다. 그런 이들이 반대편 시민을 향해선 빨갱이니 토착 왜구니 하며 날 선 욕설을 뱉고 사회 밖으로 배척하려는 모습에 흠칫 놀랐다.

물론 공동체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동에는 단호해야 한다. 그래서 국회와 사법기관, 헌법재판소가 있다. 거리에 나온 시민들끼리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험악한 딱지를 붙이는 모습은 안타깝다. 우리 사회가 지난 수십년간 치유하기 위해 애써왔던 분열과 갈등의 상처가 다시 도지면 어떡하나 걱정된다.

갈등 없는 사회는 없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이 공존한다. 반대 의견을 말할 자유도 보장하고 경청하면서 합의점을 찾는 것이 민주주의의 본 모습이다. 물리적 폭력도, 말의 폭력도 과감히 물리쳐야 한다.

조금 엉뚱한 상상을 해보았다. 저 많은 사람이 집회에 가기 전, 혹은 끝난 뒤 광화문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이나 인사동의 갤러리에 들르면 어떨까. 거리에서는 서로를 노려보고, 으르렁대고, 큰소리로 외치고, 다른 생각을 저주한다. 미술관에서는 서로 같은 작품을 바라보고, 감상을 소곤소곤 나누고, 서로 다른 생각에 귀 기울이면서 내 사고와 감성의 지평이 넓어지는 걸 경험한다. 바로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장면이다.

새해에는 미술관에서 만나자. 함께 바라보고, 상상과 감흥을 나누자. 다른 생각, 다른 세계를 만나는 일이 우리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드는 경험을 하자. 새로운 그림, 새로운 대한민국을 함께 그리자.

김지방 디지털뉴스센터장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