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우승이 있긴 했지만 굳이 점수를 매긴다면 50점짜리 시즌이었던 것 같다. 이런저런 부상으로 기량을 100% 발휘하지 못한 대회가 많았기 때문이다.”
올해로 투어 7년 차가 되는 이가영(25·NH투자증권)은 최근 국민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진한 아쉬움부터 토로했다. 많은 준비를 했으나 예상치 못한 부상으로 빛을 보지 못한 여한이 그만큼 컸다는 얘기다.
그는 작년에 총 30개 대회에 출전, 25개 대회서 컷 통과를 하면서 롯데오픈 우승 등 6차례 ‘톱10’에 입상했다. 상금 순위 16위(5억8562만8997원), 대상 포인트 순위 17위로 커리어 하이를 찍었던 2022년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실망스러운 결과는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만족하지 않는 눈치다. 이가영은 “우승은 잘한 일이지만 몸 상태가 안 좋아 전체적으로는 마음에 썩 드는 성적표는 아니다”며 “작년 시즌 중에 손가락 골절과 갈비뼈에 금이 가는 부상을 당했다. 4~5개 대회는 손가락 깁스를 하고 출전했다. 당연히 기량 100% 발휘할 수 없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가영은 아마추어 때 한국여자골프를 이끌 최대 우량주로 꼽혔다. 2015년부터 3년간 국가대표를 지내며 동갑내기 최혜진(25·롯데)과 주니어 여자 골프의 쌍벽을 이뤘다. 프로로 전향한 뒤 2018년 2부인 드림투어에서 2승을 거둬 상금랭킹 3위(8591만5534원)로 정규투어 시드를 획득했을 때만 해도 기대는 현실이 되는 듯했다.
하지만 KLPGA투어 벽은 높았다. 투어 데뷔 4년 만인 2022년 동부건설·한국토지신탁 챔피언십에서 생애 첫 승을 신고했다. 첫 승 전까지 22차례나 ‘톱10’ 입상이 있었다. 우승 기회도 많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번번이 마지막 라운드에서 부진해 그 기회를 날려 버리곤 했다.
힘들었던 시기에 대해 이가영은 “골프 선수 생활은 길다. 꽃도 피고 지는 시기가 다르다. 주니어 시절 경쟁했던 다른 선수들에 비해 조금 늦게 피었다고 생각하고 그동안 아쉬웠던 부분을 좀 더 만회해 나가려 노력 중”이라며 “좀 더 발전하기 위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겠다. 아직 남은 날들이 많다. 꼭 활짝 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시즌을 마친 뒤 꾸준히 웨이트 훈련을 하고 있다는 이가영은 오는 19일 태국 파타야로 한 달간 전지훈련을 떠난다. 그는 “체력 훈련과 쇼트 게임, 그중에서도 퍼트와 그린 주변 어프로치를 집중적으로 연마할 생각이다. 물론 드라이버 비거리도 좀 더 늘릴 생각”이라며 “실전 감각은 3개의 시암코스를 번갈아 라운드하는 것으로 유지할 것 같다”고 소개했다.
이가영은 올해 목표에 대해 “전체적인 샷지수 능력이 높아지는 게 목표”라며 “상하반기에 각각 1승씩 2승을 거둔다면 만족할 것 같다. 그것들을 이루기 위해 하나씩 하나씩 준비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가영은 닮고 싶은 롤 모델이 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서 활동 중인 김세영(31)과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에서 활동하다 은퇴한 김하늘(36), 그리고 현재도 적잖은 나이에 젊은 선수 못지않은 경기력을 보이고 있는 신지애(36)다.
이가영은 “세 언니들 모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신인 때는 몰랐는데 작년에 부상당하고 나서 체력적인 부문 유지하면서 뛴다는 게 정말 대단하다는 걸 실감했다”며 “자기관리 잘하면서 나이 들어서도 선수 생활을 하고 있는 언니들이 정말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나도 언니들을 닮고 싶다”고 했다.
이가영은 투어에서 많은 팬들을 몰고 다니는 대표적 선수 중 한 명이다. 2021년에 결성된 것으로 알려진 팬클럽 ‘가영동화’는 이가영의 가장 든든한 백그라운드다. 그는 “잘하나 못하나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하다. 다들 은퇴하지 말고 끝까지 함께 가면 좋겠다고 한다”라며 “지금까지 응원과 지지해 주신 만큼 더 노력해서 같이 더 좋은 결과, 성과 느끼면서 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힘든 투어 생활을 버티게 해주는 힘의 근원은 또 있다. 다름 아닌 반려견 천둥이다. 천둥이는 이가영이 2018년 2부 투어 데뷔 때 입양했다. 그는 “투어 생활을 같이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당연히 힘이 많이 된다”라며 “우승할 때마다 천둥이가 곁에 있었다. 그 정도로 투어를 같이 다닐 때가 많다”고 귀띔했다.
정대균 골프선임기자 golf56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