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편치 않아 일찍 잠자리에 든 터였다. 깊은 잠에 빠졌는데 누군가 다리를 흔들며 깨웠다. “여보, 지금 그렇게 누워 잘 때가 아닌 것 같아.” 아내의 호들갑에 거실로 나와 TV를 보니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언하는 담화가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사촌동생도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언니, 오빠가 뭐래요? 정말 계엄이 맞대요?”
반신반의하며 계엄 포고령 1호를 훑어보았다.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 아무래도 편집국의 지시를 받아야 할 것 같았다. 그야말로 아닌 밤중의 홍두깨에 차를 몰고 회사로 향했다. 오후 11시쯤 국회 앞은 벌써 통제 중이었다. 어렵게 우회해 회사로 들어오니, 회사 인근에서 저녁 자리를 갖던 기자들이 속속 회사에 도착했다.
정치부는 모두 전화기를 들고 바쁜 상태였다. 국회의원이 체포됐다느니, 누구는 담을 넘어 국회로 들어갔다느니, 시민이 경찰에게 맞아 쓰러졌다느니 같은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 카카오톡으로 밀려들었다. 급기야 군 헬기가 국회에 착륙했다고 했다. 군인들이 국회 본관 유리창을 깨고 진입한 사진이 회사에 보고됐다. 그즈음 TV 중계에 우원식 국회의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속속 모여들었고, 우여곡절 끝에 자정이 지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됐다. 고백건대 이때만큼 민주당이 국회 과반을 차지한 사실이 감동적이었던 때가 없었다. 윤 대통령은 결국 오전 4시30분쯤 국무회의를 열고 비상계엄 해제를 의결했다.
복잡했던 생각이 점차 명료해졌다. 윤 대통령은 국민의 심판을 받고 법의 심판대에 설 것이다. 국회는 윤 대통령을 탄핵할 것이다. 두 번 해봤으니 탄핵 절차는 질서 있게, 신속하게 처리될 것이다. 국회의 키를 쥔 민주당은 조기 국정 수습에 나설 것이다. 하지만 12월 14일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이런 기대는 물거품이 돼 갔다. 민주당은 한덕수 권한대행을 또 탄핵했고, 최상목 권한대행에게도 탄핵 압력을 가했다. 검찰의 내란죄 수사는 “수사 농단”이라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넘기도록 압박했다. 정작 공수처 수사가 지지부진할 땐 국회에 공수처장을 불러 망신주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다. 수많은 특검법이 반복해 발의됐고, 폐기됐다. 그 과정에서 여야 간 의미 있는 정치적 협의도 없었다.
민주당은 국정 수습보다는 사정기관처럼 윤 대통령에 대한 법적 단죄에만 매달렸다. 그리고 이는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 해소를 위해 어떻게든 조기 대선을, 조기에 확정 지으려는 것이란 확신을 심어줬다. 나라가 이 모양인데, 민주당은 한 달간 수권 능력 증명보다는 국민 분노 자극에만 힘을 쏟았다. 그 사이 극우 유튜버를 발판삼아 극우 지지층이 결집했고, 보수 진영 전반으로 지지세가 확산했다. 친박의 조직력을 배운 친문, 친문의 김어준 활용법을 배운 보수. 팬덤 정치도 지독한 진흙탕에 빠져들었다.
관저에서 진지전을 벌이던 윤 대통령이 15일 마침내 공수처에 체포됐다. 절체절명의 국정 공백 위기가 이제 두 번째 챕터에 접어든다. 극단의 정치 갈등 속에서 우리 경제는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글로벌 변수 여파로 침몰하고 있다. “이재명은 안 된다”는 보수층, 지난 한 달간 행태에 실망한 중도층. 이들에게 민주당은 수권 능력을 증명할 수 있을까. 이 대표는 윤 대통령 체포 직후 “이제 민생과 경제에 집중할 때”라고 말했다. 결집한 강성 보수층을 상대하며 민주당이 어떤 성과를 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 돌고 돌아 다시 분노만 자극하는 상태로 돌아온다면 민주당이 이미 손에 쥔 것처럼 느낄 수 있는 정권 교체도 마냥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강준구 콘텐츠랩장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