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흰 국화 한 송이 들고

입력 2025-01-17 00:32

“흰 국화 한 송이 들고/사진 속 너를 본다/너와 나의 거리/모르는 곳에서/모르는 곳으로 가는 동안만이/우리들의 길 또는 생애다// 정해진 길 없는 길/건너고 건너도/결코 다가설 수 없는 사랑도/전쟁과 장사일 뿐/원래 없는 것이니 모래 더미의 싸움일 뿐// 안녕/부디 잘 가요//가장 흔한 말이/왜 가장 슬픈 말인지/흰 국화 한 송이 들고/사진 앞에/고개를 숙이는 이 자리.” ‘그 끝은 몰라도 돼’(아침달, 2025)

문정희 시인의 시 ‘트랜스퍼’를 읽는다. 색으로 빗대어 이야기하자면, 죽음은 숯이나 먹물처럼 검은색이 아니라 흰색에 가깝지 않을까. 여러 가지 물감이 섞인 포용의 색, 가시광선의 빛을 흡수한 색은 검정에 다다른다. 상복이 검은 이유도 세상에 남겨진 이들이 떠난 이의 슬픔을 흡수하기 때문인가. 그런데 수의는 왜 흰빛이 도는 삼베일까. 백색은 빛을 반사한다. 마치 이생에서 겪었던 눈부셨던 기억을 내려놓고, 가장 가볍고 밝은 소멸로 가라고 말해주는 것처럼. 죽음은 어쩌면 물질의 형태를 지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영혼의 집이었던 육신을 지우고, 우리의 정신이 우주에 한 방울의 우윳빛으로 맺혔던 ‘최초’로 돌아가는 일, 명도 100%의 가장 밝고 환한 빛 속으로 환승하는 일이다. 살아 있음으로 죽음을 경험하게 되는 아이러니가 바로 우리의 생애 아닌가.

매화가 봄의 첫 기별을 알리는 꽃이라면, 서릿발 내리는 겨울에도 피어나는 꽃이 국화다. 꽃집에 들러 작은 국화 화분을 산다. 계절의 마지막을 배웅하듯 소담하고 깨끗하게 핀 국화. 그 모양이 동그랗게 오므려 맞댄 손 같다. 종이를 깔고, 국화를 놓는다. 아껴둔 향도 하나 피운다. 오늘은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합동 추모식이 열리는 날. 열어둔 창문으로 바람이 불어온다. 눈이 맵다. 바람은 우리가 모르는 곳으로 연기를 데려가리라. 나직한 목소리로 기도한다. “안녕, 부디 잘 가요.” 연기가 휜다.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