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석 건보공단 이사장, 담배소송서 직접 변론

입력 2025-01-16 02:02
정기석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15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담배 소송 항소심 제11차 변론에 참석하기에 앞서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정기석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담배 회사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직접 변론에 나섰다. 호흡기내과 전문의인 정 이사장은 “흡연은 폐암의 직접적 원인”이라며 법원이 담배와 질병과의 인과 관계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고등법원은 15일 건보공단이 담배 제조·수입·판매사인 KT&G와 한국필립모리스, BAT 코리아 등을 상대로 진료비 533억원(피해자 3465명)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송의 11차 변론기일을 열었다.

처음으로 직접 법정에 선 정 이사장은 “원고 측 대표이기도 하지만, 40년 넘게 호흡기내과에서 임상 경험을 한 전문가로서 이 자리에 섰다”며 “세계보건기구(WHO)는 간접흡연까지도 1군 발암물질로 분류하고 있고, 흡연이 폐암을 유발한다는 사실은 과학을 넘어 전 세계적인 상식”이라고 말했다. 앞서 건보공단은 흡연 관련 질환으로 진료비 지출 규모가 증가하고 있지만, 담배 회사들은 담배의 위험성을 감소시키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며 2014년 4월 14일 소송을 제기했다.

정 이사장은 “의사가 환자 의무기록지에 흡연 여부를 문진하고, 금연을 권했는지를 보는 것은 좋은 진료의 객관적 지표”라며 “(직접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의사는 ‘흡연은 또 다른 폐암의 위험요인일 뿐이니 적당히 관리하라’고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11년째 이어진 담배 소송의 쟁점은 흡연과 호흡기 질병과의 직접적인 인과관계 여부를 인정하느냐다. 앞서 2020년 11월 20일 1심은 “흡연은 폐암을 유발하는 독립적인 원인이 아니다”며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 흡연과 폐암의 인과성이 통계적으로는 유의미하지만, 개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같지 않다고 본 것이다.

정 이사장은 또 담배 회사가 담배 중독성을 숨겼다며 사회적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KT&G 측 변호인은 “담배 중독성이 자유의지를 훼손시킬 정도로 아예 못 끊을 정도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기존 법원의 판단”이라고 반박했다.

보건의료 전문가와 시민단체는 담배 회사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은철 대한예방의학회 이사는 “남성과 여성의 기대수명 차이가 6년 정도인데, 그중 4년 이상 벌어진 원인은 ‘흡연’으로 설명된다”며 “역학적으로 담배가 폐암을 일으킨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열 국립암센터 금연지원센터장도 “비흡연자의 간접흡연 위험까지 높이는 상황에서는 담배 회사가 사회적 비용에 대해 공동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유나 이정헌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