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초등생부터 직장인·유학생·만학도 모두 ‘고객’

입력 2025-01-15 18:57 수정 2025-01-16 16:10
국립군산대 ‘2+2 외국인 교육과정’에 참여한 외국인 유학생이 교수로부터 1대 1 지도를 받고 있다. 이 과정은 본국에서 대학을 2년 이상 다닌 학생을 편입생으로 받아 남은 2년을 국립군산대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지역 기업체에서 실습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국립군산대 제공

학생·학부모 선호도가 높은 서울 지역 일부 대학과 의대 등 인기 전공을 제외하면 ‘학생 수 절벽’에 안전지대는 없는 상황이다. 김병주 영남대 교육학과 교수가 지난해 말 국회 토론회에서 발표한 ‘고등교육 재정지원 전략’ 자료에서 추계한 ‘입학자원’(고교 졸업 뒤 대학 진학이 예상되는 인원)은 충격적이다. 지난해 43만7706명에서 2040년에는 26만1428명으로 입학자원이 60%가량 증발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지방대가 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끌어올리더라도 상황은 녹록지 않다. 고교 졸업생만 바라봐서는 지방대의 미래는 암울하다. 국립군산대가 적극적으로 외연 확장에 나서는 이유다. 직장인이나 만학도 등 평생교육 대상을 확대하는 것은 물론 초등학생까지 대학의 ‘고객 리스트’에 올리는 등 팔을 걷어붙인 모습이다.

대학이 만들고 운영하는 늘봄학교

국립군산대는 ‘거점형 늘봄학교’를 올해 3월 새 학기부터 운영할 계획이다. 늘봄학교는 교육부 국정과제로 초등학생들의 ‘돌봄 공백’을 줄이기 위해 마련된 정책이다. 학생들이 학교 정규 수업을 마치고 학부모들이 퇴근하기 전까지 ‘학원 뺑뺑이’를 돌거나 방치되지 않도록 기존 학교 방과후 프로그램과 돌봄 기능을 통합했다. 학생들이 학교에 머물며 양질의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집처럼 편하게 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는 개념이다.

농·어촌 지역의 작은 초등학교들은 개별 학교 단독으로 늘봄학교를 운영하기 어렵다. 그래서 주변 학교 학생들을 모아 거점형을 만들기도 한다. 군산시도 이런 거점형 늘봄학교가 필요한 지역이다. 군산의 초등학교들은 도시지역에 46.3%, 농·어촌·산업단지에 53.7%가 분포한다. 하지만 초등학생들은 좁은 도시지역에 87.3%가 몰려 있고, 넓은 농·어촌·산업단지에 12.7%가 다니고 있다. 또 농·어촌·산업단지 초등학교의 65% 이상은 전교생 60명 이하 소규모 학교다.

국립군산대는 농·어촌·산업단지의 초등학생들을 학교 정규 수업 이후 대학으로 데려와 교육 프로그램과 휴식 공간을 제공할 예정이다. 이런 시도는 전국 대학 중 최초다. 대학에는 학생을 가르칠 인력과 공간, 기자재가 풍부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다. 국립군산대 관계자는 “지난해 개최한 학부모 대상 설명회에선 대학에서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학원에 보낼 필요가 없어진다는 반응이 절대다수였다”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전국적으로 수요가 늘고 있는 늘봄 강사를 양성하는 과정을 개설할 예정이다. 늘봄 강사로 일하려는 재학생에게는 대학에 있는 거점형 늘봄학교가 실습터가 되는 것이다.

가장 공들이고 있는 부분은 교통이다. 농·어촌·산업단지의 학생들이 대학과 초등학교, 가정을 안전하게 오갈 수 있어야 실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지역 노인들에게 복지 차원에서 제공하는 택시 서비스를 활용할 계획이다. 택시를 이용하면 학생들의 이동 거리를 최소화할 수 있을 전망이다.

오원환 국립군산대 군산형 늘봄학교 사업추진단장(미디어문화학부 교수)은 “개별 학교 차원에서 운영하는 늘봄학교와 국립군산대가 제공하는 거점형 늘봄학교가 상호 보완 속에 병행 운영되는 방안을 학교, 교육 당국, 지자체 등과 마련 중”이라며 “특히 교육 소외계층 학생에게 교육과 놀이, 휴식을 제공해 교육 격차를 줄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고교생은 물론 외국인 유학생도 고객

사진은 국립군산대 운동장에서 학생과 지역 주민들이 눈사람을 만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 국립군산대 제공

중학생을 대상으로는 과학영재를 조기에 발굴해 가르치는 과학 영재교실도 활성화할 계획이다. 군산 같은 비수도권 중소도시에선 공부 부담이 본격화되는 초등 고학년이나 중학생 시기에 학생이 대도시로 빠져나가는 게 고민이다. 대학이 질 좋은 교육 과정을 운영하면 사교육 감소 효과는 물론 인구 유출을 막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고교생은 올해 전국적으로 시행되는 고교학점제를 활용한다. 고교학점제란 고교생이 마치 대학생처럼 진로와 적성에 맞는 수업을 선택해 듣고 학점을 누적해 졸업하는 제도다. 고교학점제를 도입했을 때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지역별 학교별 격차다. 대도시의 큰 고교에서는 개설되는 수업이 지역 중소도시의 소규모 고교에선 만들기 어려울 수 있다. 고교에서 수업 선택의 폭은 학교생활기록부 내용을 좌우할 수 있어 대입과 직결된다. 이런 격차가 방치될 경우 대도시 고교로 학생들이 빠져나가게 된다.

국립군산대는 군산 지역의 고교들과 협력해 강사 인력과 교육과정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지역 고교생과 접점을 넓혀 나갈 계획이다. 지역의 기업들과 협력해 고교를 졸업하고 국립군산대에 진학해 공부한 뒤 지역 기업에 취업해 지역에서 뿌리내리도록 하는 체계를 구축한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외국인 유학생도 국립군산대의 중요 고객이다. 지난해 도입한 ‘2+2 외국인 교육과정’을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본국에서 대학을 2년 다닌 학생을 편입생으로 받아 나머지 2년을 국립군산대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지역 기업에서 실습하는 프로그램이다. 외국인 유학생 입장에선 안정적인 학생 신분으로 실무를 배워 국내 기업에 취업할 수 있다. 대학은 학생을, 기업은 양질의 인력을, 지역은 인구 소멸을 막을 정주 인구를 확보할 수 있다. 올해 1학기에는 중국과 몽골,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등에서 최대 30명을 모집한다.

이장호 국립군산대 총장은 “대학이 고교 졸업생을 받아 가르치고 알아서 취업하라며 팔짱 끼던 시대는 끝났다”며 “앞으로 초등학생부터 직장인, 만학도까지 교육하면서 지역의 학교와 기관, 기업 등을 연결해 시너지 효과를 내도록 하는 지역의 성장 엔진으로 기능해야 대학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군산=이도경 교육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