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과 탄핵 사태로 국정 혼란이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대북 정책이 심상찮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 지명자는 14일(현지시간) 상원 군사위원회 인사 청문회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북한을 ‘핵보유국(nuclear power)’이라고 불렀다. 그동안 미국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목표를 위해 피해왔던 표현을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신임을 받는 장관 후보자가 공식적으로 쓴 것이다. 지난 13일엔 트럼프 당선인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직접 대화를 통해 핵동결이나 군축 협상의 ‘스몰딜’에 합의할 가능성이 있다고 국가정보원이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보고했다. 한반도에서 중대한 외교·안보 변화가 예고되고 있는 셈인데 당사자인 한국은 지금 리더십 붕괴로 대응을 제대로 못하고 있으니 답답할 뿐이다.
미국이 한국을 배제한 채 북한과 북핵 용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제거 수준의 군축·대북 제재 완화 협상을 한다는 건 한반도 정세에 엄청난 파고를 몰고올 사안이다. 헤그세스 지명자의 발언 후 외교부 당국자는 “핵확산금지조약(NPT) 상 북한은 절대로 핵보유국 지위를 가질 수 없다”고 했고 미 백악관도 “그 사안(북 핵보유국 인정)에 대한 우리의 정책은 변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물러나는 바이든 행정부의 입장을 트럼프 행정부가 언제까지 견지할지는 의문이다.
헤그세스 지명자가 사생활 등 자질 논란으로 인해 장관 임명 여부가 확실치 않은데다 그의 발언이 국방 및 핵지식 부족에 기인했기에 크게 무게를 둘 필요가 없다는 미 조야의 지적도 있다. 다만 한국의 정보당국과 미 국방 장관 지명자가 며칠새 일맥상통한 미국의 한반도 정책 변화 가능성을 언급한 걸 우연이라고 치부할 수도 없다. 트럼프 당선인이 대선 기간과 당선 이후에도 김정은과의 친분을 여러번 강조해온 터여서 불안감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한국 패싱, 미국의 북한 핵보유국 인정은 우리 안보 면에선 재앙과도 같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총동원해 닷새 후면 출범할 트럼프 행정부와 긴밀히 접촉하며 한·미 동맹 기조와 북핵 저지 의지를 적극 공유해야 한다. 다만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외교안보 전략의 틀을 새로 짠다는 각오와 대비도 필요하다. 핵잠수함 도입 등 핵 역량을 키우는 방안을 선택지에서 배제할 수 없는 때가 오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지금 외교적으로 절체절명의 시기지만 우리는 리더십 공백 피해를 고스란히 보고 있다. 정부, 여야가 안보 문제만은 대립하지 말고 한목소리를 내면서 외부의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