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샤르 알아사드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며 오랜 내전을 끝내고 시리아 과도정부를 이끄는 반군 세력이 내부적으로는 모든 종파의 포용을 약속하고 서방을 향해서는 유화적 메시지를 발신하는 등 국가 정상화를 위해 애쓰는 모습이다. 하지만 대내외적으로 불안한 요인이 여전히 많고, 서방 주요국들도 시리아의 새 집권 세력이 함께 손잡을 수 있는 대상인지를 ‘오디션’ 보듯 조심스럽게 따져보고 있다.
반군 분열과 종파 분쟁이 위험 요인
아사드 정권이 붕괴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과도정부는 여전히 라타키아, 홈스, 하마 등지에서 아사드 잔당 세력의 저항과 맞닥뜨리고 있다. 이에 과도정부 군대는 아사드 지지 세력을 ‘국가 위협’으로 규정하고 소탕 작전을 벌이는 중이다. AP통신에 따르면 최근 타르투스에서 무력 충돌로 과도정부군 14명, 친아사드 민명대 3명이 사망했다. 타르투스는 아사드 가문이 속한 이슬람 시아파 계열인 알라위파의 거주 지역이다. 내전 감시 단체인 시리아인권관측소(SOHR)는 과도정부의 대응이 보복성 조치로 번지고 있다며 “새로운 시리아는 복수보다는 정의·민주·평등·법을 기반으로 세워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종족과 성향이 다양한 반군 세력들 사이의 분열이 시리아를 다시 내전의 수렁에 빠트릴 수도 있다. 과도정부는 이슬람 수니파 하야트타흐리르알샴(HTS) 등 주요 반군과 합의해 이들을 국방부 산하로 통합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쿠르드족 민병대 시리아민주군(SDF)이 통합을 거부하며 친튀르키예 시리아민족군(SNA)과 계속 충돌하고 있다. 지난 9일 북부 만비즈에서 두 무장세력 간 교전이 벌어져 민간인을 포함해 37명이 숨졌다.
튀르키예는 SDF가 튀르키예 내 쿠르드족 분리주의 무장단체 쿠르드노동자당(PKK)과 함께 분리독립운동을 벌일 것을 우려해 SNA를 앞세워 대리전을 치르고 있다. 반면 미국은 시리아 내 극단주의 단체 이슬람국가(ISIS)를 견제하기 위해 SDF를 지원한다. 하칸 피단 튀르키예 외무장관은 “시리아에서 테러리스트를 몰아내는 것이 올해 우선순위”라며 자국군의 시리아 주둔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우리는 시리아 영토의 어느 부분에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며 침략 의도는 부인했다.
HTS 수장으로 시리아 과도정부 실권자인 아메드 알샤라는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국영방송 알아라비야와의 인터뷰에서 “시리아 북동부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과도정부가 SDF와 대화를 하고 있다”며 “쿠르드족도 시리아를 직조하는 한 부분으로 이들을 분리할 계획은 없다”고 강조했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트워치(HRW)의 중동 담당 국장 아담 쿠글은 “과도정부가 반군 통합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리비아처럼 무장세력 간 끝없는 분쟁에 빠질 위험이 크다”고 전망했다. 리비아는 2011년 ‘아랍의 봄’ 혁명 여파로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이 붕괴된 이후 동부를 장악한 하프타르의 리비아국민군(LNA)과 유엔이 인정하는 서부 트리폴리의 리비아통합정부(GNU) 간 동서 내전이 이어지고 있다.
종교 및 종파 분쟁도 시리아 통합의 큰 걸림돌이다. 시리아 인구 약 2300만명 가운데 70%는 수니파이며 알라위파가 10%를 차지하고 있다. 알샤라는 최근 레바논의 드루즈파(시아파 계열) 지도자와의 회동에서 “시리아에서 어떤 종파도 배제되지 않을 것”이라며 모든 종파를 포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일부 세력은 여전히 새로운 정부가 자신들의 안전을 완전히 보장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있다. 특히 아사드 정권 붕괴 이후 보복과 박해에 시달리는 알라이위파에선 일부가 안전 보장을 요구하며 무장 해제를 거부하고 있다. 알라위파 지도자들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모든 전쟁 범죄자가 공평하게 처벌받아야 한다. 특정 집단만 처벌받아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란이 시리아 내 종파 갈등을 조장해 대리 세력을 구축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됐다. 미국 전쟁연구소(ISW)에 따르면 이란군 장성인 베흐루즈 에스바티는 최근 테헤란 연설에서 “우리는 수년간 함께 일했던 모든 네트워크를 통해 저항 세력을 형성할 수 있다”며 시리아 내 반란 세력에 대한 지원을 시사했다.
지난해 성탄절 직전에는 시리아 내 기독교인 다수 거주지인 수카일라비야의 중앙광장에 설치된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의 방화로 훼손돼 기독교인들의 대규모 항의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스라엘은 “이참에 영토 넓히자”
시리아의 혼란을 틈타 영토 확장을 꾀하는 이스라엘의 움직임도 골칫거리다. 이스라엘은 아사드 정권이 무너지자 북부 점령지 골란고원의 경계를 넘어 시리아 영토 안쪽 비무장 완충지대까지 병력을 진입시켰고, 올해까지 점령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일부 마을에서 이스라엘군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총격으로 부상자가 발생해 국경에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미국과 유럽은 시리아 과도정부에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미국은 이슬람 테러단체 알카에다의 연계 조직으로 출발했던 HTS를 테러조직으로 지정한 것을 여전히 해제하지 않으면서도 시리아에 대한 제재를 한시적으로 일부 완화해 인도적 지원의 길을 열었다. 유럽연합(EU)은 오는 27일 외무장관회담을 열고 시리아에 대한 제재 완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의 ISIS 억제 전략과 과도정부의 협력 여부가 시리아의 미래를 좌우할 것으로 전망했다. 마이크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지명자는 최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시리아 내 ISIS의 위협은 여전히 존재하고 억제해야 한다”며 미국의 개입 가능성을 열어뒀다.
최민우 기자 cmwoo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