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덕영 목사의 다함께 선교] 기도는 선교의 시작이자 열매입니다

입력 2025-01-16 03:06 수정 2025-01-16 03:06

“기도까지 할 필요 있나요.” 오래 전 어느 교회에서 새해 선교 방향을 논의하던 중 나온 이야기입니다. 무엇이 더 중요한 사역인지를 두고 교인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했고 토론은 격렬해졌습니다. 모두가 지쳐갈 무렵 한 성도가 말했습니다. “주님의 분명한 계획이 있을 테니 함께 기도하며 결정을 내리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위와 같은 반문이 돌아왔습니다. “무슨 이런 일에 기도까지 하느냐. 늘 하던 대로 하자”는 얘기였습니다. 조금 지나친 예화처럼 보일 수 있지만 기도의 우선순위를 묻게 합니다. 선교에서 기도를 ‘필수’로 여기지 않는다면 과연 주님의 뜻을 따라갈 수 있을까요.

새해는 늘 새로운 다짐과 함께 시작됩니다. 많은 교회와 성도들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헌신을 결단합니다. 이는 아름답고 귀한 일이지만 우리의 헌신이 반드시 주님의 뜻에 들어맞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베드로의 이야기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예수님께서 체포되시던 밤, 베드로는 대제사장의 종에게 칼을 휘둘러 귀를 잘랐습니다. 그는 주님을 지키겠다는 열정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행동했지만 예수님은 그를 책망하셨습니다.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 베드로의 열정은 오히려 주님의 기쁨과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베드로의 실패는 어디에서 시작됐을까요. 바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의 자리를 지키지 못한 데서 비롯했습니다. 예수님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지만 베드로와 제자들은 잠에 빠졌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분별력을 잃고 충동적인 결정을 내리기 쉽습니다. 반면 주님은 기도를 통해 자신을 배반할 자들의 접근을 알았고 십자가를 향한 길을 담대히 걸어가셨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자리를 지키지 못한 제자들은 그 길을 따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부인하고 배반하는 길로 내몰렸습니다.

기도는 선교의 부속물이 아니라 본질입니다. 아무리 많은 자원과 열정이 투입된다 해도 기도가 빠진 선교는 주님의 뜻과 멀어질 위험이 큽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하셨지만 성령의 능력을 받기 전까지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도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성령 없이 선교는 온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는 기도로 시작됐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이 있었던 것도 안디옥교회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선교를 떠난 것도 모두 기도의 자리에서 이뤄졌습니다. 기도 없이는 성령의 충만함이 없고 성령의 충만함 없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선교 사역은 불가능합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비전을 주십니다. 성경은 “자녀들은 예언하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며 늙은이들은 꿈을 꾼다”고 말합니다. 예언, 환상, 꿈은 모두 하나님의 뜻을 ‘보는’ 것과 연결됩니다. 비전이 없다면 방향을 잃고 방황하거나 심지어 위험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지금 주님의 뜻이 보이지 않는다면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비전을 가진 리더들과 함께하며 교회의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십시오. 기도는 단순히 개인의 신앙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기도는 우리의 시야를 열고 성숙한 신앙으로 성장하게 하며 다른 영혼을 붙들 힘을 줍니다.

기도는 선교의 마지막 수단이 아닙니다. 그것은 선교의 시작이며 모든 열매를 맺는 근원이 됩니다. 기도를 통해 성령의 능력을 받아 주님의 기쁨 되는 선교를 이뤄가길 바랍니다. 기도는 단순한 옵션이 아닙니다.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비전을 보고 그 비전 안에서 선교의 길을 걸어가십시오. 주님께서 당신의 작은 기도를 통해 큰 이야기를 이루실 것을 기대하며 담대히 기도하십시오.

혹시 기도가 어렵게 느껴진다면 이렇게 시작해 보십시오. “주님 제가 모르겠습니다. 이 길이 맞는지 알려 주십시오.” 단 한마디로도 충분합니다. 우리의 부족한 기도가 하늘을 움직이는 첫 단추가 될 수 있습니다. 이제 기도로 시작해 하나님의 뜻 안에서 바른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갑시다. 우리의 사역이 주님의 칭찬과 영광으로 이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새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