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학년도 대입을 뒤흔든 가장 큰 변수는 의대 증원이었다. 대입의 ‘꼭짓점’에 있는 의대 입시를 손대면 서울 상위권 대학으로 연쇄 반응이 나타나고, 서울 중위권 대학이나 지역거점 대학의 당락에도 영향을 끼친다. 이를 염두에 둔 ‘상향 지원’은 2025학년도 입시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다만 2026학년도 의대 모집인원은 ‘제로베이스(원점)’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입시 현장의 불확실성은 올해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의대 블랙홀’ 현실화
2025학년도 의대 정시모집 인원은 1599명이다. 전년도 1206명보다 393명 늘었다. 하지만 2025학년도 의대 정시 지원자는 1만519명으로 전년도 대비 2421명 증가했다. 입시 전문가들은 모집인원 증가에 따른 합격 기대심리 상승으로 고3 최상위권과 n수생이 대거 지원한 결과로 풀이하고 있다. 의대 합격에 대한 기대심리 상승은 치대, 한의대, 약대 등 메디컬 계열의 지원자 증가를 이끈 것으로 보인다. 의대에 붙어 빠져나가는 인원이 많아지면 모집인원 증가가 이뤄지지 않았더라도 메디컬 계열 합격 가능성이 상승한다고 본 것이다.
종로학원에 따르면 치대 정시 모집인원은 2024학년도와 2025학년도 모두 270명으로 동일하다. 하지만 2025학년도에 정시 원서를 낸 인원은 1657명으로 234명 증가했다. 약대도 상황은 비슷하다. 2024학년도 862명에서 2025학년도는 854명으로 모집인원이 줄었지만 지원자는 7082명에서 7670명으로 588명이나 증가했다. 한의대 정시 지원자도 2434명에서 2700명으로 266명 늘어났다.
반면 서울 상위권 대학 이공계 학과와 이공계 특성화 대학에 원서를 제출한 인원은 감소했다. 서울대 이공계열(의대 등 메디컬 계열 제외) 지원자는 2024학년도 3134명에서 2549명으로 585명 줄었다. 경쟁률은 4.86대 1에서 4.01대 1로 떨어졌다. 연세대 지원자도 2854명에서 2589명으로 265명 줄었다. 경쟁률은 5.24대 1에서 4.7대 1로 하락했다. 고려대는 정시 모집인원이 789명에서 830명으로 늘면서 지원자가 3321명에서 3350명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정시 모집인원이 늘어난 만큼 지원자가 오지 않아 경쟁률은 4.21대 1에서 4.04대 1로 떨어졌다.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등 4대 과기원의 정시 지원자도 줄었다. 카이스트가 2024학년도 2147명에서 2025학년도 1333명으로 37.9%(814명)나 줄어 낙폭이 가장 컸다. 과기원 중 최상위권 수험생 비중이 커 의대 증원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울산과기원(유니스트) 387명, 광주과기원(지스트) 366명, 대구경북과기원(디지스트) 332명 순으로 지원자가 줄었다. 한국에너지공과대(한전공대) 역시 120명 줄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4대 과기원은 정시 3회 지원 규정에서도 예외인데 지원자가 크게 줄었다. 최상위권 수험생 선택지에서 (4대 과기원은) 이미 지워졌고 상위권에도 매력이 크지 않다는 걸 보여줬다”고 말했다.
공고한 대학 서열 드러낸 ‘의대 증원’
의대·치대·한의대·약대 등 메디컬 계열의 정시 문을 두드린 인원은 2024학년도 1만9037명에서 2025학년도에 2만2546명으로 3509명 증가했다. 의대만 놓고 보면 2421명이다. 고급 이공계 인재를 양성하고 있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정시 지원자가 821명, 4대 과기원과 한전공대에선 2019명 감소했다. 이공계 인재 상당수가 의대 증원 여파로 메디컬 계열로 넘어갔다는 추정을 가능케 하는 수치다.
의대 증원 여파는 최상위권 입시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정시 지원을 분석해보면 상향 지원 흐름이 뚜렷해졌고 결국 지방대 충원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로학원 분석에 따르면 서울 소재 대학을 일컫는 이른바 ‘인(in) 서울 대학’ 41개교 지원자는 2024학년도 18만9005명에서 2025학년도 19만4169명으로 5164명이 증가했다. 경인권 42개교의 경우 10만6651명에서 10만7709명으로 1058명 늘어났다. 수도권 대학 83개교의 정시 지원자가 전년 대비 6222명 늘어난 것이다.
비수도권 소재 119개 대학(정시 경쟁률 공개 대학 기준) 지원자는 2024학년도 20만6781명에서 2025학년도 20만3188명으로 3593명 줄었다. 수도권 대학과 비수도권 대학에 중복으로 지원하는 경우가 많아 비수도권 대학들이 추가모집을 벌이더라도 정시에서 결국 충원하지 못할 가능성이 더 커졌다는 분석이 많다.
‘의대 쏠림’은 사실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정부가 다양한 대책을 내놨지만 ‘백약이 무효’인 상태였다. 이번 의대 증원을 통해 의대를 정점으로 하고 지방대들이 바닥을 깔아주는 대학 서열이 더 명확해졌을 뿐이란 분석도 있다.
교육부는 의대 쏠림을 완화하려면 이공계 인재들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면서 의대 증원도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의사 수가 많아져야 의사란 직업의 매력이 하락해 의대 쏠림도 완화된다는 논리다.
하지만 의사단체 달래기에 나선 정부가 2026학년도 의대 모집인원을 ‘빈칸’으로 남겨놓은 상황이다. 교육계 관계자는 “모집인원이 과거로 회귀하거나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는 시그널이 여기저기서 나오는데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면 수험생과 학부모 혼란은 더 가중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