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사랑 배운 유학생, ‘복음의 씨앗’ 돼 세계로 퍼져간다

입력 2025-01-18 03:01
아셀리나(왼쪽)와 퓨리티 학생이 지난 8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글로벌학생생활관에서 열린 SNU수요펠로십 모임에 참석해 찬양을 인도하고 있다. 그래픽=강소연

대학과 대학원 등 국내 고등 교육기관에서 공부하는 외국인 유학생 수가 지난해 4월 기준 20만명을 넘겼다. 꿈을 좇아 낯선 땅에 정착해 이방인으로 고군분투하는 이들이다. 다양한 국적의 이방인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 일각의 시선은 여전히 차가운 경우가 많다. 이런 가운데 유학생들을 따스하게 맞이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나누는 캠퍼스 사역자들의 전국 곳곳에서 활동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이들은 새로운 환경에서 어려움을 겪는 유학생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나누며 친구가 되고, 휴일이나 명절에 가족처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이런 활동을 통해 만들어진 모임은 각자의 고향 친구를 만나 모국어로 이야기를 나누는 건강한 공동체가 된다. 무엇보다 그들이 언젠가 본국으로 돌아갔을 때 크리스천 지도자, 신앙의 전파자가 될 아주 작지만 귀한 ‘복음의 씨앗’이 곳곳에 뿌려지고 있다.

서울대 교수가 시작한 유학생 모임
서울대학교 유학생들이 지난 8일 SNU수요펠로십 모임에서 찬양을 인도하고 있다.

지난 8일 오후 7시 무렵 기자가 찾은 서울 관악구 서울대 캠퍼스 내 글로벌학생생활관에서는 유학생 20여명이 삼삼오오 모여 함께 찬양을 부르고 있었다. 약속된 예배 시간보다 1시간 앞서 도착해 있던 학생들도 있었다. 그만큼 기다리는 모임인 셈이다. 미리 모인 학생들은 샌드위치를 나눠 먹으며 서로의 근황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있었다고 했다. 참석자들의 국적도 인도 인도네시아 일본 필리핀 등으로 다양했다.

이 모임은 서울대 언어학과 남승호 교수가 지난해 9월부터 시작한 ‘SNU 수요 펠로십’이다. 남 교수를 비롯한 서울대 내 기독인 교수들과 서울대 앞 캠퍼스 사역을 하는 갈릴리침례교회 등이 함께하는 이 펠로우십은 매주 수요일마다 서울대 국내 학생과 유학생들과 함께 예배하고 소그룹으로 성경 공부를 하고 있다.

모임에선 유학생이 찬양 인도를 맡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한다. 케냐 출신인 퓨리티와 모잠비크에서 온 아셀리나가 대표적이다. 이날 예배서 만난 아셀리나는 “지난 8월 졸업한 뒤 박사과정에 지원하면서 우울하고, 외롭기도 했었다”며 “이 모임에서 나다운 모습으로 있을 수 있었고, 스트레스를 건강한 방식으로 풀 수 있는 법을 알게 됐다”고 했다.

방학에도 공동체 모임은 계속된다. 특히 외롭기 쉬운 명절엔 지역 교회와 연계해 아이스 스케이팅, 비무장지대(DMZ) 투어 등 함께 시간을 보낼 프로그램을 마련하기도 한다. 남 교수는 “서울대에만 120개국에서 온 2700여명의 유학생이 있다. 전국적으로 유학생이 늘어나는 추세”라면서 “이들이 본국으로 돌아갈 때 좋은 크리스천 리더로 세워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유학생, 해외 선교의 겨자씨
네팔 감리교 감독 수먼 고우덤 목사(뒷줄 왼쪽 다섯 번째)가 감신대 신학대학원 졸업 때 겨자씨 모임을 지도한 이덕주 교수(앞줄 왼쪽 다섯 번째)와 유학생 친구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모습. 신앙과지성사 제공

감리교신학대 신학대학원에는 21년 전통의 유학생 동아리 ‘겨자씨’가 있다. 이덕주 감신대 명예교수가 2004년 당시 유학 중이던 네팔 방글라데시 캄보디아 몽골 중국 일본 등지에서 온 유학생 10명과 함께 만든 정기 모임이다. 모임 이름은 성경에 등장하는 겨자씨 비유(막 4:30~32)에서 착안했다. ‘작은 겨자씨 한 알이 큰 나무로 성장해 여러 새의 쉼터가 되듯 유학생도 시작은 미약하지만 창대한 열매를 맺는 믿음의 사람이 되자’는 의미를 담았다.

유학생들은 매주 수요일 이 교수의 연구실에서 예배하고 교제하며 타향살이의 시름과 학업 부담을 잊었다. 한국 사회에서 겪는 희로애락도 함께 나눴다. 특히 이 교수의 격려가 이들에게 큰 힘이 됐다. 감신대 유학 당시 겨자씨 초대 회원으로 활동한 네팔 감리교 감독 수먼 고우덤 목사는 최근 출간한 자서전에서 “교수님께 학교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했을 때 본인이 미국서 공부할 때 경험을 말해주며 제 상황을 깊이 공감해주고 기도해준 게 기억에 남는다”고 회고했다. 이어 “여러모로 바쁜 가운데서도 유학생을 위한 정기 모임을 먼저 제안해 주셔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며 “교수님이 매주 전한 말씀과 격려를 영양분 삼아 우리 유학생들은 한 주일을 살았다”고 말했다.

유학 생활을 무사히 마친 겨자씨 소속 유학생 가운데는 고우덤 목사처럼 고국으로 돌아가 현지 목회를 감당하는 이들이 적잖다. 말 그대로 스스로 겨자씨가 돼 복음을 퍼뜨리는 존재가 된 것이다. 이 교수는 “한국에서 신앙 훈련을 받은 유학생들은 한국교회 선교에 있어 옥토 같은 존재”라고 했다. “복음 불모지에서 부흥을 경험한 한국교회 사례를 익힌 유학생들이 현지인 대상으로 학교와 병원, 보육원 등 다양한 기관을 세우거나 한국 선교단체와 협력해 목회하면 그 결실이 한국인 선교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 때문”이다. 그는 “고린도전서 3장 6절 말씀처럼 유학생을 훈련·파송한 한국교회가 바울처럼 씨를 뿌린 것이고 유학생은 아볼로처럼 현지에서 물을 뿌리는 역할을 감당하는 셈”이라며 “주님 안에서 한국교회와 유학생이 협력할 때 겨자씨의 비유 속의 결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생계 어려워진 유학생이 맺은 결실
심성재(앞줄 왼쪽 네 번째) 목사와 박종환(앞줄 왼쪽 세 번째) 교수가 우즈왈(앞줄 왼쪽 첫 번째), 프라비스(뒷줄 왼쪽 세 번째) 등 학생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모습이다. 심성재 목사 제공

전남 무안에 있는 국립목포대에는 조선해양공학과 박종환 명예교수와 나승수 교수, 심성재 YJC인터내셔널교회 목사가 함께 꾸린 유학생 모임이 8년째 이어지고 있다. 네팔 출신 석·박사과정 유학생을 위해 시작됐지만 인도네시아 유학생과 국내 학생들이 참여하면서 ‘목포대 영어예배’와 ‘인도네시아 모임’으로도 확장됐다.

목포대 영어예배는 매주 화요일 저녁 6시30분 캠퍼스 인근 글로벌비전센터에서 열린다. 인도네시아 학부생과 네팔 석·박사과정 학생, 박사후연구원, 연구교수까지 다양하게 모인다. 인도네시아 모임인 ‘ITS 펠로십’은 수요일 저녁 6시 목포대와 인도네시아 명문 ITS(Institut Teknologi Sepuluh Nopember)대 이중 학위를 취득하거나 졸업한 뒤 대불국가산업단지에서 일하는 이들이 중심축이다.

심 목사는 “목포대에 와 있는 인도네시아 네팔 등 유학생은 현지 명문대 출신이거나 사회 지도자 계층의 자제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목포대 모임은 타국까지 공부하러 왔다가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빠진 유학생들을 만나게 되면서 시작됐다. 심 목사는 “캠퍼스 사역을 하러 갔다가 교수 사정으로 연구 프로젝트가 중단돼 공장에서 일하며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는 네팔 유학생들을 알게 됐다”며 “일주일에 한 번씩 모임에서 만나 함께 저녁을 먹고 예배도 드리고, 한글과 한국 문화를 알려주는 등 교제하며 가까워진 것이 현재 모임의 시작”이라고 했다.

최근 박사학위를 받고 연구교수가 된 네팔 출신 쉬레스트 우즈왈은 이 모임을 통해 하나님을 만났다. 네팔에는 신분 계급을 나누는 카스트가 존재한다. 최상위인 브라만 계급에 속하는 학생 파우델 프라베쉬와 사군 수베디도 세례를 받았다. 심 목사는 “낯선 땅에서 학업을 하면서 지친 이들에게 희망의 씨앗을 심을 때 기적이 일어난다”며 “힌두교의 나라인 네팔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세례를 받기는 쉽지 않은 그런 기적이 한국 땅에서 일어나고 있다”이라고 했다.

글·사진=조승현 양민경 기자 cho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