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슬기로운 방학’ 논의 필요하다

입력 2025-01-16 00:30

경쟁 위주의 한국 교육을 바꾸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런 시도 가운데 모든 학생이 ‘슬기로운 방학 생활’이 가능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논의 테이블에 올렸으면 한다. 지금까지 방학은 학생들에게 재충전보다는 부족한 입시 과목을 보충하는 시간에 가까웠다. 필자는 ‘한국의 초·중·고 12년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하고 긴 지뢰밭’이라고 한국 교육을 규정한 책 ‘교육소비’의 저자 이종승씨의 문제의식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많은 학부모는 자녀들이 피 말린 12년의 경쟁 터널을 지나는 걸 보며 애간장을 태운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었을 것이다. 초·중·고 12년 동안 주어지는 24번의 방학이 단지 경쟁을 위한 시간이라면 아이들의 인생은 물론 한국 사회의 앞날도 어두울 것이다.

한국 학생들이 방학을 성적 경쟁의 연장전으로 보내고 있을 때 서구의 학생들은 ‘미래를 위한 시간’으로 채우고 있다. 미국은 학습 손실을 방지하기 위해 영어, 수학, 과학 등 주요 과목에 대한 보충 수업이 이뤄지는 ‘여름 학습 프로그램’과 스포츠, 자연, 예술 및 음악 캠프, 사회봉사 활동에 적합한 프로그램들이 운영되고 있다. 부럽게도 사회적 약자인 장애 아동의 학습 및 사회성 개발을 지원하는 ‘이스터실즈 서머 캠프’도 운영 중이다.

영국의 ‘서머 리딩 챌린지’는 사회공동체가 방학을 맞은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대표적 사례다. 이 챌린지는 1999년 비영리단체인 리딩 에이전시가 어린이들에게 여름방학 동안 독서를 통해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워주고 도서관과의 연계 강화를 위해 도입됐다. 4~11세 어린이들이 참여한다. 2023년에는 ‘레디, 셋, 리딩’이라는 주제에 약 70만명이 참가해 6주간의 여름방학에 6권의 책을 읽는 목표에 도전했다.

기성세대와 정책 결정자들이 나서서 미래세대에게 ‘보물 같은 방학’을 만들어줘야 한다. 우선 할 일은 방학을 방학답게 만들지 못하는 경쟁 교육을 없애는 데 초점을 맞추면서 학습보다 학생 성장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래서 공부 대신 자연을 경험하고 운동장을 뛰놀며 봉사의 희열을 느끼는 게 장기적으로 더 유리하다는 인식을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심어줘야 한다.

이를 위한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강력한 추진 주체가 있어야 정부, 지방자치단체, 비정부기구(NGO), 마을, 대학, 학교, 학생을 유기적으로 묶을 수 있다. 지금도 교육청, 개별학교, 지역사회 등에서 다양한 방학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미국이나 영국처럼 온 사회가 나서지 않다 보니 지역마다 시스템이 들쭉날쭉이다.

방학은 오롯이 학생들의 성장을 위한 시간이 돼야 한다. 소중한 방학의 한가운데를 보내는 청소년들을 위해 알찬 방학 만들기를 위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

문승태 국립순천대 대외협력 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