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하늘 아래 순백의 나라, 오대산
강원도 평창군·강릉시·홍천군에 걸쳐 있는 오대산(五臺山)은 주봉인 비로봉(1563m) 외에 호령봉(1531m)·상왕봉(1491m)·두로봉(1422m)·동대산(1434m) 등 5개 고봉 사이에 다섯 개의 ‘대’(臺)가 있어 이름을 얻었다. 삼재가 들지 않는다고 해서 조선시대 사고(史庫)가 자리했던 곳이다. 가을 단풍으로 유명하지만 오래되고 기품 있는 전나무·자작나무·신갈나무 등이 눈과 빚어내는 겨울 풍경은 깊고 묵직하다.
비로봉 산행은 상원사탐방지원센터에서 시작한다. 정상으로 향하는 길에는 전나무·물박달나무·들메나무·피나무 등이 보물 같은 얼음꽃(氷花)·눈꽃을 달고 영롱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눈을 뒤집어쓴 나뭇가지는 순록의 뿔을 닮았다.
비로봉은 높은 산세를 내려다볼 수 있도록 일부러 만들어놓은 전망대처럼 널찍하고 평평하다. 상왕봉, 두로봉, 노인봉, 동대산 등 병풍처럼 펼쳐진 오대산 주요 봉우리가 펼쳐놓은 풍경이 한 폭의 그림이다. 동쪽으로 동대산과 노인봉 너머 강릉 주문진 앞바다가, 북쪽으로 설악산의 장쾌한 마루금이 펼쳐진다. 남쪽으로 황병산과 풍력발전기가 우뚝한 선자령이 아스라이 보인다.
하얀 눈꽃 속 아찔한 계단, 대둔산
전북 완주와 충남 금산·논산의 경계를 이루는 대둔산(878m)은 ‘호남의 금강’이라고 불릴 정도로 수려한 풍광을 자랑한다. 완주 쪽 대둔산은 기암괴석과 V자로 깊이 파인 계곡을 지닌 험준한 바위산이다. 아찔한 절벽과 험한 암벽이 멋지게 어우러져 있다.
힘든 코스임에도 짧은 시간에 정상까지 다녀올 수도 있다. 케이블카와 출렁다리, 좁고 가파른 철제 계단 등이 도와준다. 케이블카가 단숨에 고도를 높여준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조금만 가면 임금 바위와 입석대를 연결한 길이 48m, 폭 1.2m의 구름다리를 만난다. 1975년 건설된 국내 최초의 출렁다리였다. 눈을 뒤집어쓴 나무와 고고한 듯 서 있는 바위, 붉은색 다리가 섞여 장관을 펼쳐놓는다.
이어 늘어선 3개의 바위 봉우리가 마치 신선 같은 삼선바위다. 바위 꼭대기로 이어진 철계단은 삼선계단이다. 실제 경사는 51도이지만 체감 각도 70도에 계단 수 127개, 폭 50㎝로 아찔함의 극치다. 위로 올라가는 일방통행길이다.
이후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면 정상에 닿는다. ‘하늘에 닿을 듯 높다’는 뜻의 마천대다. 우뚝 솟은 개척탑 옆에 서면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산하가 장쾌하다.
산호초 같은 순백의 산, 남덕유산
호남과 영남의 경계인 덕유산의 최고봉인 향적봉(해발 1614m)은 남한의 산 중에서 네 번째 높다. 산의 덩치가 크다 보니 남쪽으로 약 15㎞ 떨어져 우뚝 솟은 봉우리는 남덕유산(1507m)으로 따로 불린다. 향적봉은 백두대간에서 살짝 벗어나 있지만 남덕유산은 백두대간이 지나는 분수령이다.
남덕유산은 전북 장수군과 경남 함양군·거창군에 걸쳐 있다. 사시사철 풍광이 빼어나지만 남덕유산의 묘미는 겨울에 있다. 순백의 눈꽃·서리꽃이 코발트 빛 하늘과 붉은색 겨울나무 군락과 어우러져 절경의 겨울왕국을 빚어낸다.
남덕유산 눈꽃 산행은 대체로 영각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한다. 영각재에 오르면 날을 세워 불어대는 칼바람이 볼을 얼얼하게 한다. 거센 바람은 나뭇가지에 서리꽃을 빚어낸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달라붙은 설화와 상고대는 바다의 산호초를 닮았다. 정상에 서면 덕유산의 장쾌한 백두대간 마루금과 주변 풍광을 파노라마로 볼 수 있다.
바다를 즐기는 산, 괘방산
강원도 강릉은 북쪽 주문진에서 최남단 옥계까지 70여㎞에 달하는 기나긴 해안선을 보유한 ‘바다의 고장’이다. 덕분에 이색적인 바다 풍광도 즐길 수 있다. 산을 걸으며 발아래 바다를 조망하는 것이다. 강릉의 남쪽 강동면에 자리 잡은 괘방산(345m)이 제격이다.
들머리는 조선 성종 때까지 수군만호 군영이 있던 안인진 삼거리 주차장이다. 계단을 올라 남쪽으로 뻗은 능선을 걸으면 왼쪽에는 바다가 펼쳐지고, 오른쪽에는 동해고속도로와 7번 국도가 지난다. 숨바꼭질하던 풍경은 ‘통일공원 제2활공장’에서 트인다.
바다 쪽으로 강릉통일공원과 해안도로가 아래로 내려다보이고, 그 너머로 동해가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뒤로 시선을 돌리면 하얀 눈이 덮인 백두대간 선자령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보는 일출이 장관이다. 검푸른 바다를 헤치고 치솟는 태양이 감동적이다.
글·사진=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