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서 욕설 다 들려요”… 한남동 시위에 멍드는 동심

입력 2025-01-15 02:00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가 지난 13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초등학교 인근에서 열리고 있다. 집회는 학교 정문에서 약 100m 떨어진 거리에서 열렸으며 곳곳에서 경찰이 경계를 서고 있다.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 학교 학생과 학부모가 연일 계속되는 집회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관저 주변에서 열리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성 및 반대 집회에서 발생하는 소음뿐 아니라 일부 격앙된 시위 참여자의 비속어와 혐오 발언으로 험악한 분위기가 고조된 탓이다. 학생 교육 환경에 악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안전까지 위협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3일 오후 1시쯤 찾은 서울한남초등학교는 방학기간에도 돌봄교실과 방과후학교 등을 다니는 학생들의 통행이 끊이지 않았다. 대통령 탄핵 이후 학교 주변에선 주로 3곳에서 집회가 진행되고 있다. 학교 정문에서 300m쯤 떨어진 서울 지하철 6호선 한강진역 일대에선 보수단체 집회가 열린다. 정문에서 200m쯤 떨어진 곳에선 진보단체 집회가 진행된다.

2곳 외에 학교 정문에서 불과 50m 떨어진 곳에서도 소규모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린다. 한강진역 일대 집회 장면을 현장음과 함께 생중계한다. 밤낮없이 집회가 이어지면서 학교 주변 소음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 9일 학교 앞 집회 장소에선 스크린을 통해 연사의 험한 비속어가 그대로 생중계됐다. 13일도 마찬가지였다. 14일 오전 홀로 등교하는 학생에게 한 집회 참가자가 말을 걸자 학생이 서둘러 정문으로 들어가며 피하는 모습도 보였다.

학교 담벼락에는 ‘우리 아이들 배움 위해 소리는 낮춰주세요’ ‘통학로는 지켜주세요’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일부 정문 바로 앞에 자리를 잡은 집회 참가자들 주변으로 쓰레기와 담배꽁초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흡연하는 시위 참가자들에게 경찰이 자리를 옮겨 달라고 요구하는 모습도 보였다.

학부모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4학년 자녀 손을 잡고 하교하던 40대 여성 김모씨는 “아이가 교실에서도 욕이 다 들린다고 한다. 길에서도 시위 참가자들이 큰 소리로 고함을 쳐 무서워해 며칠간 반차를 내고 하굣길을 같이한다”고 하소연했다.

올해 2학년이 되는 아이를 둔 30대 여성 이모씨는 “지난주엔 학교 앞에 지금보다 사람이 더 많았는데 경찰이 등교 차량을 위해 길을 터 달라고 부탁했는데도 아무도 따르지 않았다”며 “결국 아이 손을 잡고 인파를 뚫으며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지난주 방과후학교를 다녀온 아이가 너무 시끄럽고 무섭다며 울먹여 사흘 동안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못했다”고 했다.

그럼에도 집회를 통제할 뾰족한 방법을 찾기는 어렵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은 학교 주변으로 집회가 신고돼 학습권이 뚜렷하게 침해될 우려가 있는 경우 관할 경찰서장이 시위를 금지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다만 학교 주변 집회를 전면 금지하는 의무 조항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학교 앞 집회를 제한하는 소음 규정 등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집회 시위의 자유가 우선시돼야 하지만 현재 학교 주변은 혐오 발언이 오가는 집회에 무방비 상태”라며 “스쿨존 제도처럼 학교 인근 집회에 관한 규정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최원준 기자 1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