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둘을 키우는 워킹맘 이모(40)씨는 저녁 준비를 하다가 막내(4)가 39도 가까이 고열에 오르자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상비해둔 해열제가 떨어졌는데 주변 약국은 다 닫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낭패를 봤다. 독감이 유행하며 편의점에서 파는 해열제도 일찌감치 품절이었다.
이씨처럼 늦은 시간 약국을 이용해야 하는 이들이나 병원과 약국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방 거주자 등에게 편의점은 약국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최근 인플루엔자(계절 독감)가 급속도로 퍼지면서 편의점 감기약 매출이 덩달아 증가한 것만 봐도 그렇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GS25의 지난달 27일부터 지난 2일까지 감기약 매출은 전주 대비 34.4% 증가했다. 타이레놀 등 진통제 매출 역시 26.2% 늘었다. 전월 동기와 비교하면 감기약 96.1%, 진통제 65.5%씩 급증했다. CU에서도 감기약 매출이 늘었다. 지난달 30일부터 지난 2일까지 감기약 매출은 전주 대비 27.4%의 신장률을 보였다.
특히 심야시간대에 안전상비약 판매가 활발히 이뤄졌다. 약국이 문을 닫고 영업을 재개하기 전인 오후 6시부터 오전 6시까지 매출이 전체 안전상비약 매출 비중의 57%를 넘었다. 명절 연휴에도 편의점의 안전상비약 매출이 상승한다. CU의 경우 지난해 추석 기간인 9월 13일부터 18일까지 매출이 직전 주 대비 49.4% 늘었다.
편의점 안전상비약 수요는 지방 점포에서 더 높게 나타난다. 독감 확산이 빠르게 진행된 1월 1주차 지방권 점포 감기약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9.2% 급증했다. 서울과 수도권이 23.6% 급증한 것에 비하면 크게 늘어난 수치다.
다만 안전상비약에 대한 만족도는 제각각이었다. 지방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양모(36)씨는 주로 읍내 보건소를 이용한다. 하지만 오후 3시면 접수가 마감되고, 약국과도 거리가 멀었다. 간단한 의약품은 편의점에서 사곤 하지만 만족하지 못할 때도 있다. 양씨는 “감기약이 한 종류밖에 없어서 부득이하게 샀는데, 별다른 효과를 모르겠더라”고 말했다.
편의점업계는 안전상비약 품목 확대 논의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2012년 약사법 개정으로 13개 품목이 정해진 뒤 10년 넘게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현재 약 2000종, 유럽은 1만종의 안전상비약품을 편의점에서 취급하고 있다.
오경석 편의점산업협회 팀장은 “화상연고, 지사제, 속 쓰릴 때 복용하는 제산제 등은 병원에 가야 할 정도는 아니지만 당장 불편함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안전상비약”이라며 “안전성이 충분히 입증된 약들은 추가로 취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어린이용 의약품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어린이들은 약 복용에 제한이 많은데 안전상비약 중 어린이용 타이레놀이 2개나 단종됐다. 사실상 총 11종을 취급하는 셈”이라며 “의정갈등에 묻혀서 안전상비약 제도에 대한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