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쿠팡에서 ‘퀵플렉서’로 불리는 배송기사에 대해 법적 근로자가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지난해 5월 고(故) 정슬기씨 사망으로 불거진 쿠팡 배송기사 불법 파견 논란에 관한 정부의 첫 판단이 나온 것이다. 정부는 쿠팡 배송기사들을 근로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라고 보고 불법 파견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다만 근로자를 개인사업자로 둔갑시키는 이른바 ‘가짜 3.3계약’과 안전 규정 위반 등이 대거 적발됐다.
고용노동부는 쿠팡의 물류배송 자회사 쿠팡로지스틱스(쿠팡CLS)를 대상으로 지난해 진행한 종합 근로감독 결과를 14일 발표했다. 산업안전보건 기획감독, 일용근로자 ‘가짜 3.3계약’, 배송기사 불법파견 감독 등이 이뤄졌다.
고용부는 현장 조사 83회, 배송기사 137명 대면조사, 배송기사 1245명의 지난 1년간 카카오톡 분석 결과를 토대로 배송기사들이 근로자가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배송기사들이 화물차를 소유하고 자신의 책임으로 차량을 관리하고, 아르바이트나 가족과 배송할 수 있고, 본인 재량으로 입차 시간을 조정하면서, 쿠팡CLS 또는 영업점으로부터 별도 지시를 받지 않고 취업규칙 및 복무규정 등을 적용받지 않는다는 점 등을 근로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라는 근거로 제시했다.
배송기사들은 택배 영업점과 위탁·수탁 계약을 체결한 개인사업자로 돼 있다. 하지만 정씨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통해 쿠팡CLS가 지휘·감독을 해온 정황이 드러나면서 근로자인데 사업자로 위장됐다는 불법파견 의혹이 일었다. 특히 정씨가 쿠팡CLS 측에 “개처럼 뛰고 있긴 해요”라고 답했던 메시지가 공개돼 파장이 커졌다. 고용부 관계자는 “정씨 카카오톡 1년 치를 봤는데 옆구역 지원 요청에 관해 대화하면서 ‘개처럼 뛰고 있긴 해요’란 표현이 나온 것”이라며 “옆구역 지원 요청은 거절할 수 있고, 정씨도 거절한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가짜 3.3계약’도 무더기로 확인됐다. 이는 4대 보험료 및 퇴직금 지급 등을 피하려고 근로자를 사업소득세 3.3%를 내는 개인사업자로 위장 등록하는 것을 뜻한다. 쿠팡CLS 위탁업체 3개소에서는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으며, 쿠팡CLS 위탁업체 4개소 및 CJ대한통운 물류센터 2개소에서는 일용근로자 360여명에 대해 사업소득세를 납부하고 있었다.
쿠팡CLS 본사와 택배영업점 등을 대상으로 진행된 산업안전보건 분야 감독에선 41곳의 법령 위반 사항이 적발됐다. 정부는 4건의 사법처리, 53건의 과태료 부과 처분(약 9200만원), 34건의 시정조치를 내렸다.
고용부는 “이번 감독은 24시간 배송 사업에 대해 이뤄진 최초의 감독으로 근로자 및 배송기사의 건강권 보호와 작업 환경 개선안을 마련하도록 쿠팡CLS에 요구했다”며 “쿠팡CLS에 법 위반 사항을 해소하고 정부 요구 사항을 이행하는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토록 지도하고 이행 상황을 점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