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동해선의 경북 영덕~강원도 삼척 구간이 개통됐다. 동해선 개통으로 열차가 다니게 된 삼척과 경북 울진 및 영덕은 수려한 경관과 다양한 수산자원을 자랑한다. 이 가운데 영덕에서는 남북 방향 철도를 따라 해안에는 블루로드(Blue Road)가, 산봉우리에는 옛날 통신망이 이어진다. 그 길을 따라 겨울 여행을 떠나보자.
과거 통신망은 봉수(烽燧)대다. 봉수는 밤에는 횃불(烽)로, 낮에는 연기(燧)로 적의 출몰과 침입 등 위급한 상황을 전달하는 군사 목적의 통신수단이었다. 조선 세종대왕 대에 이르러 군사통신방법으로써 자리를 잡게 된 643곳의 봉수대는 시야가 확 트이면서 일정한 거리를 둔 산꼭대기에 설치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조선시대에는 5개 직봉로(直烽路)가 있었다. 제2직봉로는 양산 원적산(천성산), 경북 영천·의성·안동의 봉수대를 거쳐 충주 등지를 지나 한성의 목멱산(남산) 봉수대로 전달됐다. 직봉로로 전달되는 보고가 중간에 끊어지는 사고 등에 대비해 별도로 보조 코스인 간봉로(間烽路)를 통해서도 전달됐다. 황령산 동쪽 해운대에 있는 간비오산 봉수대가 황령산 봉수대 신호를 받아 동해안의 기장·울산·영덕을 거쳐 안동·충주로 연결됐다.
동해를 끼고 있는 영덕에는 네 개의 봉수가 있다. 영해면 대리 광산 봉수를 비롯, 강구면 금진리 황석산 봉수, 영덕읍 창포리 별반산 봉수, 축산면 도곡리 대소산 봉수이다.
대소산 봉수대는 조선 초기의 것으로, 영덕과 축산 일대의 동태를 정찰하던 곳이자 왜구의 침입을 중앙에 알리는 정보기지였다. 남쪽으로는 별반산 봉수대, 북으로는 울진군 평해읍 후리산 봉수대, 서로는 광산 봉수대를 거쳐 청송군 진보의 남각산 봉수대로 이어졌다.
대소산은 해발 282m의 높지 않은 산이다. 봉화산이라고도 불린다. 사방이 탁 트인 곳에 들어선 봉수대는 주변 경관을 조망하는 최고의 전망대다. 대소산 봉수대는 꼬부라진 시멘트 길을 5분여 차로 달려 오른다. 봉수대 옆에는 통신기지국이 있다. 옛날 통신수단인 봉수대와 현대의 최첨단 통신기지국이 동시에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대소산 봉수대의 전체 면적은 2826㎡(약 850평)다. 산 중심부에 원형 방어벽이 이중으로 견고하게 둘러쳐져 있다. 방어벽 안에 지름 11m, 높이 2.5m의 봉돈(烽墩)이 원추 모양으로 아담하게 설치돼 있다. 이 봉돈 위에서 나무에 불을 붙여 봉화를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봉수대 아래로 12번 해안도로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 주변에 비췻빛으로 물든 바다를 배경으로 시원스레 펼쳐진 축산항의 모습이 장관이다. 내륙으로는 영양과 청송으로 이어지는 낙동정맥과 주왕산까지도 볼 수 있다. 남쪽으로는 영덕군의 풍력발전단지가 시야에 잡힌다. 일출 때 오르면 축산항 너머로 장엄하게 떠오르는 아침 해가 진한 감동을 전해 준다.
축산항에서 바다를 끼고 남쪽으로 향하는 도보 길은 블루로드 B구간 ‘푸른 대게의 길’이다. 산자락과 산등성이를 번갈아 걸으며 고즈넉한 해안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옥빛 보석길이다.
축산항 바로 옆 죽도산은 손가락 굵기의 대나무가 빼곡하게 뒤덮고 있는 야트막한 산이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섬이어서 죽도였다. 이후 퇴적작용으로 육지와 연결됐다. 정상에 서 있는 등대까지 약 10분 걸린다. 멀리서도 보기 좋게 꼬불꼬불한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면 가슴이 후련할 정도로 탁 트인 풍경이 수고를 보상해 준다.
별반산 봉수대는 풍력발전단지에 있다. 인근 해안에는 창포해맞이공원이 있다. 야생초와 갈대숲이 함께 멋지게 어울린 해안산책로, 대게 집게발 형상의 창포말 등대, 그리고 감미로운 음악 소리가 잔잔히 깔리는 아름다운 휴식 공간을 갖추고 있다.
블루로드 일대에는 ‘경북 동해안 국가지질공원’도 있다. B코스 경정리 백악기 퇴적암층이 대표적이다. 모래로 된 사암과 진흙이 쌓여 만들어진 이암이 섞여 붉은색을 띠고 있는 편평한 대지가 푸른 바다 위에 장판이 깔린 듯 이색적이다.
지질은 축산항에서 대진항 방면 사진리 바닷가에서는 17억 년의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영덕대부정합’을 만난다. 부정합은 서로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암층이 맞닿아 있는 구조다. 약 18억 년 전 생성된 녹색편암과 1억 년 전 공룡시대에 쌓인 역암인 두 지층이 나란히 있다.
여행메모
입구에서 차 2.5㎞, 도보 130m 봉수대
영해만세시장 자연산 물가자미 막회
입구에서 차 2.5㎞, 도보 130m 봉수대
영해만세시장 자연산 물가자미 막회
대소산 봉수대는 내비게이션에서 검색하면 된다. 주소는 경북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 산20-1이다. 승용차로 간다면 당진영덕고속도로를 타면 빠르고 가깝다. 봉수대 입구에서 2.5㎞를 오른 뒤 130m를 걸어가면 닿는다. 이정표가 잘 안내해 준다. ‘영덕대부정합’은 영덕군 영해면 사진리 산141과 사진리 623 일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길옆에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지난 1일 개통한 영덕역에는 하루 왕복 8회의 ITX-마음 열차와 다수의 ‘누리로’ 열차가 정차한다. 역 앞에 버스가 주기적으로 운행되며 레일시티투어, 영덕 통통택시도 이용할 수 있다.
겨울철 영덕에서 빼놓을 수 없는 먹거리는 영덕대게다. 영덕군은 ‘팔뚝(집게발)’에 ‘완장’을 채워 박달대게를 브랜드화했다. 영덕대게축제는 오는 3월 14~17일 개최된다. 차유마을은 영덕대게의 원조 마을이다.
영해만세시장도 빼놓을 수 없다. 일제강점기 삼일절 이후 전국으로 퍼져나간 만세운동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의 만세운동이 펼쳐졌던 곳이다. 시장에서는 내용이 알찬 물회와 매운탕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자연산 물가자미(미주구리) 막회도 별미다. 인근 200년 된 고택이 늘어선 괴시리 전통마을도 둘러볼 만하다. 마을에 고려 말 성리학자 목은 이색 선생의 생가터와 기념관이 있다.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영덕=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