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시험이 2017년 폐지됨에 따라 이제 로스쿨을 마치고 변호사시험을 합격해야 법조인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 교육은 주입식으로 이뤄져 사교육과 선행학습이 판을 치며, 시험은 줄세우기 역할에 그친다. 이는 로스쿨에서도 다르지 않다. 다채로운 경험을 쌓은 인원을 특색 있는 법조인으로 양성하겠다는 로스쿨의 취지는 빛이 바랬고, 변호사시험을 준비하는 학원으로 전락해 가고 있다.
로스쿨에 뜻을 둔 학생은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학점을 관리하고 스펙을 쌓으며 법학적성시험에 대비한다. 학생선발 시 대다수 로스쿨이 가지는 관심사는 응시자가 ‘변호사시험에 합격할 것인가’와 ‘반수를 해 다른 로스쿨로 가버리지는 않겠는가’이다.
종전 사법시험 체제에서는 6년(법과대학 4년, 사법연수원 2년) 동안 법학 교육을 받았지만 로스쿨에서는 단 3년 동안 이론과 실무 교육을 마쳐야 한다. 문제는 교육기간이 짧아졌다고 공부할 대상이 줄어든 게 아니라는 점이다. 로스쿨생의 앞날을 판가름하는 변호사시험은 암기가 중심인 선택형, 논술이 접목된 사례형, 실무를 반영한 기록형을 망라한다. 게다가 초창기 90%에 육박하던 합격률은 현재 50%로 낮아져 학생들의 압박감이 크다.
단기간에 방대한 양을 공부해야 하므로 학생들은 학교 수업도 변호사시험에 나올 만한 판례와 기출문제 위주로 요령껏 진행되기를 원한다. 어렸을 때부터 학원 강의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학생들은 스스로 탐구하기보다 누군가 정리해 알려주길 원한다. 필자도 학생들의 짐을 덜어준다는 측면에서 어쩔 수 없이 시험적합성에 치중한 강의를 하고 있다.
변호사시험 문제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사례형은 과목당 5문제가 구석구석에서 어렵게 출제된다. 솔직히 말하면 필자도 60분 만에 이렇게 많은 사례를 정확하게 풀어낼 자신이 없다. 시험은 사람을 줄세우기 위한 손쉬운 도구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변호사시험은 로스쿨생이 훗날 변호사로 활동하기 위해 현재 익혀야 하는 능력은 무엇이고, 그의 위치가 여기라는 것을 평가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변호사시험은 미처 공부하지 못한 내용을 시험에 내 로스쿨생을 혼내기 위한 것처럼 보인다.
필자가 만난 변호사들은 명문 로스쿨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후배 변호사가 선례가 없는 사안에는 아예 접근을 못 하고 포기하는 것에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선례가 있으면 대기업 고객이 왜 비싼 비용을 내고 로펌을 선임하겠느냐고 반문했다. 한 대기업 법무실은 지난해 변호사를 채용하면서 출신 학교, 학점, 변호사시험 성적 등을 블라인드 처리하고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연수원에서 합숙을 하면서 개인 및 팀 과제 수행 등을 평가했는데 합격자의 입사 후 업무 처리에 매우 만족한다고 했다. 필자도 변호사시험 성적이 우수한 변호사보다 이러한 오디션 평가를 통과한 변호사가 더 궁금하다.
특히 인공지능(AI)은 이미 자료 검색과 정리, 요약, 번역에서 상당한 완성도를 보이고 있다. 앞으로는 고도의 판단과 추론 영역이 변호사에게 남을 뿐 주니어 변호사가 하던 판례를 포함한 자료 검색과 정리, 번역은 AI의 몫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로스쿨 교육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교육의 핵심은 스스로 사고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우는 데 있다. 지식의 내용보다 중요한 것은 지식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지식을 무작정 암기시키기보다 그 지식이 왜 필요한지를 따져보고, 필요하다면 획득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방대한 판례와 법조문을 들이붓는 방식의 로스쿨 교육과 시험은 AI 시대 법조인의 역량을 키우고 측정하는 데 적절치 않다. 이는 로스쿨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다른 교육에서도 마찬가지다.
박세환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