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주 칼럼] 탄핵은 오징어게임 OX 투표가 아니다

입력 2025-01-15 00:50

드라마처럼 찬반 갈린 현실 탄핵은 당위와 정의의 문제
보수와 진보 진영 싸움 아닌 민주주의와 독재의 다툼이다
세계가 한국 지켜보고 있어 신속 공정한 헌재 판결 기대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2’가 전 세계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시즌2는 전편과 달리 게임이 끝날 때마다 남은 사람들이 OX 찬반투표로 게임을 중단할 수 있다. 당장 게임을 멈추려는 사람들과 한 게임만 더 하자고 하는 사람들 사이 의견이 팽팽하다. 파란색과 빨간색으로 나뉘어 일촉즉발 상황으로 치닫는 두 그룹 사이에는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그어져 있다. 이 작품을 만든 황동혁 감독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드라마 속 OX 투표가 현실과 소름 끼칠 만큼 닮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 한남동 윤석열 대통령 관저 앞에는 탄핵 찬성과 반대 그룹이 각각 시위를 하고 있다. 경찰은 물리적 충돌에 대비해 둘 사이에 선을 그었다. 쪼개진 건 거리의 시위대뿐이 아니다. 국민 여론도 분열되고 있다. 한국갤럽의 지난달 10~12일 여론조사에서 탄핵 찬성 75%, 반대 21%로 찬성이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1월 7~9일 조사에선 찬성은 64%로 줄고, 반대는 32%로 늘었다. 국민의 약 3분의 1이 탄핵에 반대한다는 뜻인데, 놀라운 일이다.

탄핵이 오징어게임처럼 OX 찬반이 나뉠 일일까. 이건 당위의 문제이자 정의의 문제다. 민주주의의 문제이며 법치주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대통령은 정당한 사유 없이 계엄을 해서는 안 되며 어떤 이유로든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어선 안 된다. 당연한 일이다. 한 달 사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소추안 가결, 국회의 탄핵소추안 내용 변경 관련 공방, 수사권 혼선과 체포영장 집행 불발 등 여러 사건이 있었다. 그렇다 해도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이후 수사와 체포에 제대로 응하고 있지 않는 상황이 면책될 수는 없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 측은 점점 선을 넘고 있다. 대통령 측 탄핵심판 대리인단은 탄핵심판을 “정권교체 세력과 정권유지 세력, 진보 세력과 보수 세력 사이의 다툼”이라고 했다. 엄정한 헌법질서에 따라 냉정하게 판단하면 될 일을 대통령이 나서 국민을 보수와 진보로 가르고 있다. 하지만 이건 보수와 진보의 싸움도, 여야의 다툼도 아닌 민주주의와 독재의 싸움이다. 대리인단은 “평화적 계엄”이라는 말도 했다. 평화적 계엄은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아예 성립되지 않는 말이다. “비상계엄 선포 이전으로 모든 것이 회복돼 보호 이익이 없어졌으므로 헌법재판소의 심판 필요성이 없다”는 말도 했는데 들으면서도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황당한 논리다. 계엄으로 피해 본 것 없으니 없던 걸로 치자는 얘기인데 생떼도 이런 생떼가 없다.

비할 바 아니지만, 하물며 일반 회사에서도 회계 담당자가 급전이 필요해 몰래 1000만원을 뺐다가 다음 날 그대로 다시 돌려놓아도 그건 횡령이다. 커피숍에서 누군가 주인 몰래 노트북을 훔쳤다가 다시 돌려놓아도 절도죄다. 게다가 계엄 선포 이전으로 모든 것이 회복됐다는 건 무슨 논리일까. 대통령의 눈에는 환율 급등과 주가 하락 등 최악으로 치닫는 경제지표가 보이지 않는가. 광장으로 뛰쳐나온 젊은 세대의 외침이 들리지 않고, 우리를 주시하는 전 세계의 시선이 느껴지지 않는가.

대통령은 국민을 상대로 계엄을 선포하고 군대까지 동원했다. 성공하지 못한 것뿐이다. 만약 계엄이 성공했다면? 야당 국회의원들은 체포되고 국회는 해산되고 시민은 거리에서 불심검문을 당하고 언론사는 기사를 검열하는 군인이 장악했으리라. 상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하다. 그런데도 헌법기관인 국민의힘 의원 40여명이 반헌법적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대통령 체포를 막아섰다.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가.

뉴욕타임스는 칼럼에서 “‘오징어게임’이 격동의 역사를 가진 젊은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에서 탄생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라고 했다.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의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한국의 도전이 전 세계 민주주의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 유럽 등 많은 국가들의 민주주의도 ‘의심의 그늘’ 아래 놓여 있기 때문에 한국이 성공적으로 해결해 내면 세계에 영감과 교훈을 줄 것이라는 의미다.

역사적으로 친위 쿠데타가 실패한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고 한다.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평화롭게 시위를 하는 나라도 그렇다. 자긍심을 가질 일이다. 세계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남은 탄핵 절차는 법과 질서에 따라 신속하고 공정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다.

한승주 논설위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