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경제·군사력뿐만 아니라 문화와 사상에서도 초강대국을 꿈꾼다. 마오쩌둥 시대에는 봉건 잔재라고 공격하던 공자를 화려하게 부활시킨 배경에도 문화대국으로 중국의 위상을 높이겠다는 전략이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종종 공자의 ‘논어’를 인용한다. 2016년 미·중 8차 전략경제대화에선 논어에 나오는 ‘사람이 신의가 없으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를 인용해 미국을 비판했다. 갈등 관계에 있는 서구 정상들을 만날 때 즐겨 쓰는 ‘화이부동’도 논어 자로편에 나오는 문구다. 시 주석은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인 2021년 ‘제2의 결합’을 주창해 전통사상 연구의 이념적 근거까지 제시했다. 마오의 농민혁명,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처럼 중국 특유의 현실에 마르크스주의를 적용한 게 ‘제1의 결합’이라면 중국 전통사상을 통해 마르크스주의를 중국화하는 게 제2의 결합이다. 전통사상의 위상이 우수한 문화전통을 뛰어넘어 중국 특색 사회주의를 구성하는 핵심 자산으로 높아진 것이다.
시 주석에 호응한 중국 인문사회학자들은 연구의 지평을 넓혀 제2의 결합 시즌2를 준비 중이다. 공자 등 유가가 주인공이었던 시즌1과 달리 시즌2에선 도가, 법가, 묵가, 음양가 등 제자백가 전체가 무대에 오른다. 유가는 중국 역사에서 지배적인 위치에 있었지만, 다른 사상과 상호 비판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했다. 제2의 결합이 성공하려면 중국 전통사상 전체를 통합하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게 이들의 판단이다. 상하이의 한 역사학자는 “유가를 다른 학파와 대등한 지위로 낮춘 것은 학문적 인식에서 중요한 변화를 반영한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말했다. 시즌2의 선봉에 선 조직이 지난해 11월 중국 상하이 화둥사범대학에서 출범한 중국제자연구원이다. 이 대학 레이치리 부총장은 출범식에서 “제자연구원 설립은 현대 학계에서 제2의 결합 이념을 실천하는 중요한 사례”라고 말했다.
중국이 전통사상의 가치에 주목하는 이유는 지배이념으로서 마르크스주의가 갖는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농업국가였던 중국의 사회주의 혁명이나 시장경제 중심의 개혁·개방은 마르크스주의의 기본 원리와 어긋난다. 노동자, 농민보다 자본가가 더 대우받는 오늘날 중국의 현실도 마르크스주의로 정당화하기 어렵다. 더구나 20세기 후반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대거 붕괴한 이후 마르크스주의는 소프트파워로 내세울 매력을 잃었다. 중국 전통사상과의 결합을 통해 이념적 활로를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제자백가 사상을 마르크스주의와 통합한다는 제2의 결합은 소수민족을 중화민족으로 묶어버리는 전략과도 상통한다. 중화사상이라는 이름 아래 제자백가 사상과 마르크스주의를 통합하고 체계화한 결과물을 내놓고 중국은 사상적으로도 하나였다고 강조할 가능성이 크다. 세계 각국에 제자백가를 홍보함으로써 중국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소프트파워를 강화하는 것은 덤이다. 중국은 중화사상을 통해 서구 자유주의의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야심도 감추지 않는다. SCMP가 중국제자연구원 출범을 “국가·사회 운영의 가치를 놓고 서구와 벌이는 내러티브 전쟁에서 중국이 승리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평가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자유주의는 많은 한계와 결함을 안고 있지만, 근저에는 기본권으로서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보편적 가치가 깔려 있다. 중화사상이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게 아니라 통제하고 억압하는 것을 정당화하려 한다면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자유주의에 패배한 권위주의를 전통사상으로 포장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송세영 베이징 특파원 sysoh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