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내면의 나침반

입력 2025-01-15 00:31

스스로 양심에 따라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행동의 방향을 결정하는 내면의 나침반. 이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그것은 ‘염치(廉恥)’다. 염치는 ‘청렴할 염(廉)’과 ‘부끄러울 치(恥)’가 합쳐진 한자어로 성품과 행실이 바르며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염치가 있다는 것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를 지키면서도 반성과 성찰에 유연하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덕목을 갖추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처럼 긍정적인 의미를 지닌 염치는 부정적인 상황과 문맥에서 주로 언급된다. ‘염치가 없는 사람’ ‘몰염치하다’ ‘파렴치한’ ‘얌체’ 등의 표현이 우리에겐 익숙하다. 예의와 부끄러움을 모르는 상황이 일상에서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중시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가치가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염치를 상실한 모습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타인에게 무례하게 행동하거나, 온라인상에서 익명성에 기대어 남을 함부로 비난하거나, 개인의 이익을 위해 다수에게 피해를 주는 일들이 그렇다. 이런 상황을 보자면 염치는 비단 선한 마음이나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중요한 원칙임을 알 수 있다.

염치가 양심에 당당하며 타인을 존중하고 사회일원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면,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염치 있는 행동은 무수히 많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기,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기, 길에 쓰레기 버리지 않기, 공공장소에서 조용히 말하기, 노약자에게 양보하기와 같은 작은 행동들이다. 굳이 나열하지 않아도 될 만큼 모두가 아는 상식으로, 염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가장 쉬운 방법은 이를 실천하는 것이다. 염치는 순우리말로 ‘주리팅이’라 한다. 잊혀 가는 옛 낱말처럼 예의와 체면,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도 우리 내면에서 사라져 가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할 때다.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