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최경주 (32) PGA투어 도전 목표로 아내와 함께 체계적으로 준비

입력 2025-01-15 03:04 수정 2025-01-15 18:45
최경주 장로가 2009년 브리티시 오픈을 앞두고 스코틀랜드 턴베리에 있는 턴베리골프장에서 연습하고 있다. 뉴시스AP

그제야 미국에서는 잔디 걱정할 것 없이 마음껏 쳐도 된다는 걸 알았다. “형님, 어제 못 팠던 거까지 오늘 몽땅 다 파 부립시다.” 우리는 잔디를 다 파 버릴 듯 신나게 샷을 날렸다. 실제로 그 일대가 쑥대밭이 됐다. “경주야, 너는 좀 제대로 알고 얘기하지 그랬냐. 이게 뭐여. 2시간 동안 잔디 대가리만 쳤잖여.” “아따, 형님. 누가 알았나.”

천연 잔디에서 공을 찍어 치는 짜릿함은 충격 그 자체였다. 미국은 선수에 대한 대우나 연습 환경이 달랐다. 골프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미국 남자프로골프(PGA) 투어에 가기 위한 5개년 계획을 세웠다. “미국에 가야겠어.”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말했더니 아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미국에서 보고 느낀 것을 말하자 곧 고개를 끄덕였다 “5년 계획을 세우고 준비할 생각이야.” “그래요, 해봐요. 기왕 하는 거, 하려면 제대로 해야죠.” 아내는 첫째 호준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몸조리 중이었는데도 흔쾌히 동의하며 웃어줬다.

당시 내 계획을 듣고 격려해 준 사람은 아내,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 아내를 제외하곤 그 누구도 ‘할 수 있다’고 말해 준 사람이 없었다. 여자 골퍼는 몰라도 남자는 안 된다고 했다. 되지도 않을 일을 왜 하려고 하냐고 했다. 다들 ‘달걀로 바위 치기’라거나 ‘시기상조’라며 혀를 끌끌 찼다. 프로가 되면서부터 느꼈던 벽이 점점 더 답답하게 느껴졌다.

백도 없는 내가 스스로 꽃피우기 위해 노력해서 이제는 한국 최고를 넘보게까지 됐지만 가슴은 여전히 꽉 막힌 듯했다. 더 큰 세상으로 나가고 싶었다. 학연, 지연 같은 인맥 따윈 필요 없는 곳에서 맨몸으로 부딪혀 갈 데까지 가보고 싶었다. 도전해서 성공한다면 내 힘으로 꿈을 이루는 것이고 다른 사람에게 떳떳하게 꿈과 용기를 나눠 줄 수 있게 된다고 생각했다. 미국 진출을 위한 본격적인 준비가 시작됐다.

어느 날 아내가 불렀다. “호준 아빠, 우리 약속서부터 써요.” “약속서라니.” “미국에 가자면서요. 구체적으로 준비해야죠. 서로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지 얘기하고, 그대로 실천하기로 약속해요. 우리.” “좋은 생각이야. 호랑이를 잡으려면 준비부터 철저히 해야 한다. 이거지.”

아내와 머리를 맞대고 서로 바라는 것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적어 내려갔다. 담배 줄이기, 영어 공부하기, 하루에 최소 8시간씩 연습과 훈련 반복하기 등의 약속을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썼다. ‘난 할 수 있어(I Can Do It),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PGA 투어와 유러피언 투어에 간다.’

정리=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