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피는 순서로 대학이 망한다’란 말이 대학가에 회자된 지 10여년이 흘렀다. 학생 수 급감으로 남부 지역 대학부터 문 닫을 거란 암울한 전망인데, 실제 고교 졸업자가 전체 대학의 정원을 밑돌면서 현실화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뼈를 깎는 노력으로 성공 스토리를 쓰기 시작한 지방대들도 있다. 국립군산대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 대학은 신입생 충원율이 80%대까지 하락했다가 올해 100%를 회복할 전망이다. 대학 폐교는 벚꽃 피는 순서가 아니라 ‘혁신을 포기하는 순서’라는 사실을 군산대 사례가 상기시켜준다는 평가다. 군산대가 과감하게 추진 중인 ‘투트랙 전략’을 두 번에 걸쳐 소개한다.
박모씨는 군산대에 건축공학부로 입학했지만 현재는 무역학과 졸업반이다. 건축학을 공부하다 우연히 접한 마케팅과 무역 운송 쪽에 강하게 끌렸다. 건축학에 쏟은 노력이 아까웠지만 적성을 찾았으니 용기를 내기로 했다. 다른 무역학과 전공자보다 늦었지만 좋아하는 공부를 시작하자 격차는 빠르게 좁혀졌다. 그는 좋은 성적을 유지하면서 현재 무역 분야에서 일할 꿈에 부풀어 있다.
4학년 길모씨는 취업이 잘되는 학과에서 전과한 경우다. 원래 전공인 컴퓨터정보공학을 3년째 공부하다 교양 과목에서 접한 교육학에 매료돼 인생 경로를 수정했다. 국어국문학과로 진학해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강사의 길을 걷기로 했다. 그는 “대학원에 진학해 언어 전문가로 활동 영역을 넓힐 생각”이라고 했다.
군산대는 학생이 학교에 맞추는 게 아니라 학교가 학생에게 맞추는 것이 혁신의 키워드라고 했다. 이를 실행하는 게 ‘3무(無) 전과 제도’다. 전과할 수 있는 학년과 전과 가능한 인원, 전과 가능 횟수가 없어서 3무다. 지난 2023년 도입된 제도로 국가가 배출 인력을 통제하는 간호학부 등을 제외하고 대다수 전공에 적용되고 있다.
학생들은 대입을 치르면서 전공을 결정한다. 어떤 분야에 흥미와 적성이 있는지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성적이나 취업 전망 등을 보고 전공을 정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서 대학 입학 뒤 적성이 맞지 않아 고민하거나, 교양 수업 등에서 다른 전공에 강하게 끌리기도 한다. 취업 시장에서 갑자기 뜨는 전공에 눈길을 돌리기도 한다.
오정근 군산대 기획처장은 “군산대는 입학한 대로 학위를 따는 게 아니라 공부한 대로 학위를 취득한다”며 “전공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충실하게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게 우리 학교의 학생 중심 철학”이라고 강조했다.
전과 기회 확대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대학 경영자 입장에서 특정 학과로 학생이 쏠리면 교수 인력을 늘려야 하고, 학생이 빠지는 전공은 축소할 수밖에 없다. 학생이 빠져나가는 비인기 전공 교수들의 거센 저항에 직면하기 쉽다. 특히 국립대의 경우 총장을 직선제로 선출하므로 전공 장벽을 건드리긴 쉽지 않다. 대다수 대학에서 전과 제도를 운용하면서도 ‘2학년 이상 1회 허용’ 내지는 ‘입학정원 20% 이내’ 등으로 제한을 두는 이유다.
군산대는 입학 단계부터 학문의 장벽을 낮춰 충격을 완화할 수 있었다. 단과대학을 크게 ‘컴퓨터소프트웨어특성화대학’ ‘해양·바이오특성화대학’ ‘경영특성화대학’ ‘자율전공대학’ ‘융합과학공학대학’ ‘인문콘텐츠융합대학’ ‘ICC특성화대학부’ 등으로 개편했다. 또 자율전공학부(91명)를 자율전공대학(188명)으로 격상해 전공 선택권을 강화했다. 교육부가 지난해 대폭 확대한 전공자율선택제(무전공 입학)를 2022년에 미리 도입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학생들이 어떤 전공으로 쏠리든 다른 전공 교수들이 협업해 수업을 이끌어가는 ‘코-티칭(Co-teaching)’ 체계를 활성화해 비인기 교수들의 반발을 줄였다. 또한 충분한 숙고 없이 전공을 정하거나 바꾸지 않도록 ‘아카데믹 어드바이저(AA)’ 제도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AA는 학생의 진로와 전공에 대한 기본 정보부터 대학 생활 및 학위 취득 전반을 도와주는 상담 전문가들이다.
군산대는 학생을 제1 고객, 기업을 제2 고객으로 규정한다. 대학이 기업에서 요구하는 양질의 인력을 적시에 배출해야 한다는 뜻이다. 학생들이 취업 시장에 나가 다른 대학 출신과 경쟁한다는 점에서 제1 고객의 요구와도 맞닿아 있다. 군산대는 빠르게 변화하는 산업계 수요에 순발력 있게 대응키 위해 융합 전공과 소규모 전공(마이크로디그리)을 활성화하고 있다. 예컨대 A전공으로 입학한 학생이 A전공에 대한 학위 하나만 취득하는 게 아니라 A전공과 연관된 융합 전공이나 인기 있는 마이크로디그리를 갖고 나가는 것이다.
이장호 군산대 총장은 “전국적인 학령인구 감소에 더해 군산에서는 대기업들이 철수해 인구가 빠져 우리 대학도 큰 위기를 맞았다. 취임 직후인 2022년에는 충원율이 83.3%까지 떨어졌다”며 “하지만 2024학년도 99.4%, 2025학년도는 100% 회복을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학생을 중심에 놓고 대학 체질을 실질적으로 개선해야 생존한다는 공감대 속에 교직원들의 헌신이 뒷받침돼 가능했다. 혁신의 경험을 발판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도록 개혁 작업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군산=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