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콘텐츠 업계가 성숙기에 접어들며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지금까지 경쟁 관계였던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와 TV가 손을 잡기 시작했다. 양질의 콘텐츠는 플랫폼을 달리하며 수명을 늘리고, TV와 OTT는 다양해진 콘텐츠 구성으로 시청자 및 구독자를 유입시키는 윈-윈 전략이 확대되고 있다.
최근 콘텐츠 업계에서는 타 플랫폼에서 제작된 콘텐츠를 자사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가장 이목이 쏠린 건 MBC가 디즈니플러스의 인기 시리즈인 ‘무빙’을 황금시간대인 주말 밤에 편성한다는 소식이었다. 전에는 넷플릭스의 투자를 받아 제작한 ‘피지컬 100’, ‘나는 신이다’ 등 넷플릭스 독점 콘텐츠를 제공했었는데, 이번엔 그 방향이 반대가 된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SBS는 넷플릭스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었다. SBS는 신작 및 기존 드라마, 예능, 교양 프로그램을 넷플릭스에 제공하고, 올 하반기엔 SBS 신작 드라마 중 일부를 전 세계에 동시 공개하기로 했다. 넷플릭스는 이 작품들을 위한 다양한 언어의 자막, 더빙 제작과 현지 홍보 및 마케팅 활동을 돕는다. 지상파 프로그램을 OTT에서 일부 공개하는 정도에 불과했던 협력이 다방면으로 확장하는 모양새다.
이런 변화는 방송국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OTT끼리의 합종연횡도 확대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티빙은 지난달 애플TV플러스관을 티빙 앱 내에 론칭해 ‘파친코’ ‘슬로우 호시스’ 등 애플TV플러스의 대표 콘텐츠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10일에는 KT의 IPTV 서비스인 지니TV와 ENA에서만 볼 수 있었던 ‘나의 해리에게’와 ‘유어 아너’를 티빙에서 공개한다는 소식도 전했다. 티빙 관계자는 13일 “차별화된 콘텐츠 제공을 위해 글로벌 콘텐츠 협력에 이어 인기 콘텐츠 수급을 위해서도 노력 중”이라고 설명했다.
콘텐츠 업계 내에서의 활발한 협업은 업계가 성숙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란 분석이 많다. 2016년 국내에 처음 서비스되기 시작한 넷플릭스도 올해로 9년차를 맞았고,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한국의 콘텐츠들이 공개되기 시작하며 K콘텐츠 바람이 분 지도 수년이 됐다. 많은 플랫폼과 콘텐츠가 소비자에게 주어지는 상황에서, 우리 콘텐츠 혹은 플랫폼이 선택되려면 타 업체와의 협업을 통해 시청자와의 접점을 늘리는 건 당연한 전략일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해외에서 먼저 나타났다. 디즈니플러스가 훌루와 맥스를 묶은 번들(묶음) 상품을 출시했고, 파라마운트 플러스는 미국의 최대 유통 체인인 월마트 플러스와의 번들 상품을 내놨다. OTT 업계 1등인 넷플릭스도 네이버와 손을 잡으며 소비자와의 접점을 확대하고 나섰다. 지난해 11월 말부터 네이버플러스 멤버십 회원에게 ‘광고형 스탠다드’ 요금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제휴를 통해 가격과 부담을 낮추고, 회원의 유입을 늘리는 방식을 택한 셈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어떤 산업을 보더라도 태생할 때는 여러 업체가 생기다가 시간이 지나면 손을 잡는 시기가 펼쳐지지 않나. 그게 경쟁력을 극대화하는 방향이기 때문”이라며 “글로벌 OTT뿐 아니라 한국 토종 OTT도 서비스한 시간이 오래됐고, 그만큼 콘텐츠에 대한 시청자들의 눈높이도 높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각자의 강점을 앞세워 서로 다른 서비스와 손을 잡는 건 가장 효율적인 투자 방식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