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체 물리학계의 고전 ‘코스모스’를 저술한 천문학자이자 칼럼니스트 칼 세이건이 쓴 또 다른 흥미로운 책이 있다. 바로 ‘창백한 푸른 점’이다. 책은 1977년 미국이 태양계 탐사를 위해 동시에 쏘아 올린 우주탐사선 보이저 1, 2호가 찍어 보낸 사진과 정보들을 바탕으로 쓰였다. 여기엔 흥미로운 일화가 담겨 있다.
보이저 1호가 지구로부터 약 60억㎞ 떨어진 지점을 지날 무렵, 세이건은 미국항공우주국(NASA)에 도발적인 제안을 했다. 지구를 등진 채 날아가며 태양계 방향을 촬영하도록 고정돼 있던 카메라를 반대로 돌려 지구의 모습을 촬영해 보자는 것이었다. 처음엔 당연히 수용되지 않았다. 한두 푼 들어가는 프로젝트도 아니고, 탐사 목적 또한 지구가 아닌 지구 너머 태양계인데 만약 그 시도로 광학장비들이 고장 나거나 진로가 틀어지기라도 하면 막대한 손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이 모험을 감행하기로 하고 카메라를 뒤로 돌려 지구를 찍었다. 60억㎞ 떨어진 지점에서 바라본 지구의 모습은 어땠을까.
태양 광선이 만든 희뿌연 스펙트럼 속에 찍힌 자그마한 점 하나. 이 점을 본 과학자들은 이를 ‘창백한 푸른 점’이라 불렀다. 광대한 우주 공간 위에서 관조하니 우리가 대단하게 생각했던 이 지구라는 행성은 그저 창백한 푸른 점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마주한 것이다. 칼 세이건은 책에서 이렇게 표현한다.
‘이 빛나는 점을 보라. 그것은 바로 여기, 우리 집, 우리 자신인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 아는 사람, 소문으로 들었던 사람, 그 모든 사람은 그 위에 있거나, 또는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기쁨과 슬픔, 숭상되는 수천의 종교, 이데올로기, 경제이론, 사냥꾼과 약탈자, 영웅과 겁쟁이,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왕과 농민, 서로 사랑하는 남녀, 어머니와 아버지, 앞날이 촉망되는 아이들, 발명가와 개척자, 윤리 도덕의 교사들, 부패한 정치가들, 슈퍼스타, 초인적 지도자, 성자와 죄인 등 인류의 역사에서 그 모든 것의 총합이 여기에, 이 햇빛 속에 떠도는 먼지와 같은 작은 천체에 살았던 것이다.’
양가감정이다. 우주가 얼마나 거대한 곳인지에 대한 경이로움. 반면 그 경이로움을 안고 뒤를 돌아보니 그동안 내가 대단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얼마나 비루한 것인지에 대한 초라함. 모든 것을 초라하게 느끼게 하는 경이로움이란 너무도 크고 광대한 존재를 마주했을 때 느끼는 감정이며, 오직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독특한 감정이다. 그런데 인간은 이 경이로움을 마주할 때 비로소 현상 너머의 이야기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별것 아닌 일에 아웅다웅하기보다 자기 삶에 초연할 수 있게 된다.
새해가 밝았다. 자연적 시간은 선형적으로 흐르나 인간은 이를 굳이 구분하여 느낀다. 그래서 새해라는 인위적 구분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마음을 갖게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 하지만 그 신비는 이내 사라진다. 직장생활이 안기는 어려움, 여전히 변화 없는 관계들, 무의식적 불안을 불어넣는 여전한 사회에 머물다 보면 불편함은 다시 찾아온다. 아니, 벌써 찾아왔다. 무엇보다 새해가 되었음에도 우리는 지난달부터 마주한 비정상적인 정국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새로운 시작을 맞았지만 변한 것은 없으며 불편하고 불안하며 무기력하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뭘까. 신년의 느낌과 신년 계획이 아닌 경이로움의 회복 아닐까. 커 보이기만 하는 당면 과제들을 작은 것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이를 어디서 감각할 수 있는가. 당장 우주선에 탑승해 저 우주로 올라갈 수는 없다, 다행히도 조물주가 만들어놓은 거대한 자연이 있다. 그러나 우주든 자연이든 그것들이 주는 경이감은 그 순간에 머물기 십상이다. 그 자연과 우주를 창조하신 조물주의 생각과 섭리를 마주해보길 추천한다. 경이감의 근원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디 당면한 문제에 압도당하지 말라. 마땅히 압도당해야 할 것에 압도당하라.
손성찬 목사(이음숲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