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 수리센터 운영 오주철씨
직원 30명… “무엇이든 하세요”
스튜디오 창업한 나미란씨
“새로운 일, 하루하루가 즐거워요”
글쓰기 재능 인정받은 정희정씨
“시련 겪은 과거에 갇히지 마세요”
직원 30명… “무엇이든 하세요”
스튜디오 창업한 나미란씨
“새로운 일, 하루하루가 즐거워요”
글쓰기 재능 인정받은 정희정씨
“시련 겪은 과거에 갇히지 마세요”
최근 발표된 2022년 중앙암등록통계에 따르면 암에 걸리고도 살아있는 사람은 2023년 1월 1일 기준 258만8079명이다. 조기 발견과 치료술의 발전 덕에 암 환자 10명 중 7명은 5년 이상 살고 있다. 이들 가운데 암 이전의 삶, 사회로 복귀하는 사례는 흔치 않다. 그런데 여기 암 환자 꼬리표를 달고서도 새로운 인생을 씩씩하게 사는 3인이 있다. '암 생존자'로도 불리는 그들이 던지는 새해 메시지를 들어본다.
“두려움 이겨내야 비로소 빛 보여요”
오주철(37·충북 조치원)씨는 스물아홉 한창나이에 고환암 진단을 받았다. 그것도 완치가 불가한 4기. 최대로 살면 2년이라는 시한부 판정이 내려졌다. 오씨는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한 달간 아무 일도 못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처음엔 안 좋은 생각도 했지만 그는 살고 싶어졌다. 의사도 젊은 나이이니 항암 치료를 한번 해 보자고 다독였다. 그렇게 2016년 초부터 1년간 8차례, 이후 재발로 인해 2017년에 5차례 더 힘겨운 항암을 견뎠다. 25번의 방사선 치료도 버텨냈다. 그리고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암 진행이 딱 멈춘 것이다. 오씨는 “항암 중단 7년이 지난 현재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포기 안 한 의사 선생님께도 감사하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고환암을 이겨낸 유명 사이클 선수 있잖아요. 그 사람은 암 초기였지만 나는 말기로 매우 힘든 상황이었는데, 믿기지 않는 일이죠. 항암제가 잘 맞았던 모양입니다.”
일에 대한 열정도 오씨에게 삶의 버팀목이 됐다. 원래 다니던 직장에서 복귀를 허락했지만 그는 다른 선택을 했다. 지인 도움으로 2019년 휴대전화 수리센터를 열었다. 현재 세종과 청주, 울산에 점포를 열었고 직원도 30여명으로 늘었다. 오씨는 “사람이라면 뭔가 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게 ‘일’이라고 생각했다. 일을 하니까 살아있다고 느낄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직원들에게 암을 겪었다는 걸 숨기지 않았어요. ‘암 걸린 사람들은 일을 못 한다? 암 환자는 그냥 집에 있어야 한다?’ 그런 인식을 주고 싶지 않았던 거죠.”
오씨는 비슷한 처지의 젊은 암환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20·30대 암 환우 6명을 직원으로 채용한 것. 그들의 생활고를 덜어주고 암 선배로서의 자신의 경험도 공유해 주고 싶었다. 그는 암 환자들에게 꼭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그 두려움을 이겨내야 비로소 빛이 보입니다. 주저앉아서 울기만 하고 끝내면 안 되죠. 울면서라도 무엇이든 하세요.”
“저도 꿈이 생겼어요”
나미란(41·경기도 고양)씨는 2021년 오른쪽 유방암 치료를 받았다. 이후 대학 때 전공을 살려 사진 찍는 일을 하고 있다. 나씨는 “운 좋게도 상피내암(0기) 단계에서 발견돼 독성 항암제를 쓰지 않고 호르몬제로 치료해 큰 부작용을 겪지 않았다. 항암 치료를 받았으면 견디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국립암센터의 암 환자 사회복귀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새로운 꿈을 꾸게 됐다. 많은 암 환자들과 교류하며 일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고 2023년 7월 스튜디오를 창업했다.
“아프다는 핑계로 인생을 포기하지 말자고 결심했죠. 어느 날 아는 분과 있다가 ‘저도 꿈이 생겼어요’라는 말이 불쑥 나오더라고요. 암 환우들 곁에서 에너지를 받고서 새로운 꿈을 꾸게 된 거죠.”
나씨의 스튜디오는 국립암센터 암환자 사회복귀지원센터에 입주해 있다. 그는 “업체나 기관에서 의뢰가 들어오면 사진 촬영·보정 등의 일을 해주고 가까운 암 환우 분이 간단한 이미지 작업을 부탁해 올 때 작은 도움을 드리고 있다”고 했다. 틈틈이 사진 관련 강연도 하고 암 환자 사회복귀 관련 토크 콘서트에 패널로 나가기도 한다. 그는 “아예 해 보지 않았던 새로운 일을 하는 모든 상황에 하루하루가 재미있다”며 만족스러워했다.
“혼자만 아프다고 생각하면 고통이 더 크게 느껴질 뿐이에요. 암 경험자들이 있는 커뮤니티나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세요. 나만 아픈 게 아니고 나보다 더 아픈데도 더 잘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돼요.”
“작은 기쁨이라도 느껴지는 일을…”
고교 국어 교사였던 정희정(41·경기도 고양)씨에게 2018년 느닷없이 급성림프구성 백혈병이 찾아왔다. “3개월 정도 살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남편을 비롯한 가족 얼굴이 어른거렸죠.”
하지만 암과 싸우기로 했다. 그는 “지금 느껴지는 통증이 끝이 아니라 결국 낫게 되는 ‘과정’의 하나라고 생각하니 어떻게든 견디려는 마음이 생겼다”고 했다.
항암 치료와 조혈모세포이식 후 퇴원할 땐 몸무게가 42㎏까지 빠졌다. 천천히 살이 붙고 머리카락이 자라 가발을 쓰지 않아도 될 즈음, 다시 일하고픈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교단에 서기에는 체력적으로 힘들기도 하고 가족들의 염려가 컸다. 대신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프리랜서 수필가의 길을 걷기로 했다. 그간 틈틈이 웹진에 글을 썼고 수필로 신춘문예에 등단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재능을 인정받아 연희문학창작촌 입주 작가로 선정되는 기쁨을 누렸다. 쓴 글이 조금씩 해외에 알려지면서 국제아트북페어에 출품 자격을 얻는 기회도 많아졌다.
“아파 봤기 때문에 통증과 고통을 디딤돌로 삼아 새로운 업을 찾은 셈이죠. 아프게 된 일을 마이너스로만 여기지 않길 바라요. 새로운 가능성의 문이 열린 거라고 믿으세요.”
정씨는 암환자 사회복귀프로그램을 통해 알게 된 나미란씨와도 교분을 쌓으며 둘만의 프로젝트를 도모하고 있다. 두 사람은 일반인과 암 환자 대상의 독서 모임에서 사진과 글쓰기를 결합한 창작 활동을 진행해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정씨는 “현재 병을 겪느라 앞이 캄캄하더라도 이것만은 기억하라”고 힘주어 말했다. 지금의 이런 건 어떻게든 다 지나간다고 믿고 견디라고. 그는 과거에 갇히지 말고 겁먹지 말고 일로 기꺼이 나아가 보기를 권했다. “‘나’라는 인물이 조금이라도 재미있어하는 일을 찾으세요. 스릴이 넘치는 일이 아니라 내가 했을 때 작은 기쁨이라도 느껴지는 일을 택하기를 바랍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