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학 등록금 인상 여부를 두고 고민에 빠진 한 지방 사립대 총장의 한탄이다. 저출산 현상으로 신입생 충원이 어려워지는 데 비해 인건비와 기자재 비용 등 각종 지출은 늘고 있어 ‘인상 대학에 대한 불이익 조치’라는 정부의 엄포에도 불구하고 ‘인상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진퇴양난의 처지를 잘 보여준다.
지난 16년 동안 대학교들은 정부의 등록금 동결 정책에 순응하며 학부모들의 경제적 부담 완화에 적극 동참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대학의 재정 구조는 심각하게 악화했다.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사총협)에 따르면 등록금 동결이 시작된 2009년 이후 누적 소비자물가지수는 135.9% 상승했는데, 등록금 동결을 감안하면 등록금 수입은 사실상 3분의 1로 줄어든 셈이다. 사총협은 지난해 11월 회원 대학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사립대 총장들은 현재 대학이 처한 최우선 현안을 등록금 인상이라고 답했다. 또한 등록금 동결로 인한 어려움에 대해서는 95% 이상이 ‘첨단 실험실습 기자재 확충 등 교육시설 개선’ 및 ‘우수 교직원 채용’이라고 답하고, 95.53%가 올해 등록금을 ‘인상 또는 논의 중’이라고 응답했다.
이처럼 대학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자 이주호 교육부총리가 지난해 말 등록금 동결을 요청하는 서한을 전국 총장들에게 긴급 발송하는 등 정부는 매우 강한 톤으로 자제를 요청하고 나섰다. 현재 교육부는 2011년 시행된 고등교육법 11조의 ‘등록금 인상률이 직전 3개 연도 평균 소비자물가상승률의 1.5배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 ‘1.5배를 초과해 인상한 경우 해당 학교에 행정적·재정적 제재 등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규정을 근거로 동결 정책을 추진 중이다. 특히 인상률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는 대학에 대해 국가장학금 Ⅱ유형 지원 중단뿐 아니라 각종 정부 지원 사업 선정에서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는 압박을 가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 당국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벼랑 끝에 몰린 많은 대학이 등록금 인상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이미 서강대, 국민대가 올해 등록금 인상을 결정한 데 이어 연세대, 한양대, 중앙대 등도 인상을 검토 중이다. 예년과 달리 인상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배경에는 5% 정도 인상할 경우 국가장학금 Ⅱ유형 지원을 포기하는 것보다 재정 수익이 더 큰 점, 지난해 지방의 모 대학이 등록금 인상에도 불구하고 ‘글로컬대학30 사업’에 선정되자 교육부의 불이익 조치가 ‘엄포’에 지나지 않았다는 인식, 최근 인상한 대학이 추가 수익 대부분을 학생 요구에 부응해 투명하게 활용함으로써 학생들의 반응이 긍정적이었다는 점 등이 자리하고 있다. 또한 미국, 영국,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등록금 인상과 각종 기부금 수익을 통해 마련한 예산을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AI) 시대에 부응하는 교육 개혁에 광폭 투자하는 추세를 우리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위기 의식도 작용했다.
대학 당국도 최근의 불황 등 경제적 여건 탓에 등록금 인상에 부담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등록금 인상으로 인근 대학에 비해 신입생 유치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따라서 등록금 동결 정책을 풀어도 한 번에 대거 인상하는 대학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등록금 인상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차제에 국가교육위원회와 국회를 중심으로 범사회적 논의가 진행되기를 제언한다. 현재 고등교육 분야는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대학 구조 개혁, 올해 말까지만 한시적으로 시행 중인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법의 지속적 시행 여부, 대학 기부금에 대한 세액공제제 도입 등 각종 현안이 산적해 있다. 이 같은 현안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 ‘21세기 학생을 20세기 교수가 19세기 인프라에서 가르치는 현실’을 벗어나기는 연목구어나 다름없다.
윤승용(남서울대 총장·사총협 수석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