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찾은 세종시 산울동의 6-3 생활권 UR 1·2블록 행복주택 건설 현장은 본공사를 마치고 입주자를 맞을 준비로 한창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단지는 여느 행복주택 현장과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아파트 각 동은 2층까지 필로티 구조를 적용해 기둥 아래로 주민공동시설과 상가가 들어설 공간을 확보했다. 흰색과 노란색, 황토색으로 도색한 3~7층은 모두 주거 공간이다.
이곳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모듈러 공법’을 활용해 건설한 4동 416가구 규모의 아파트 현장이다. 모듈러 공법이란 현장과 떨어진 공장에서 상자 형태의 모듈을 미리 제작해 현장에서 설치·결합하는 건축 방식을 뜻한다. 각 모듈러에는 배관·전기·주방·욕실 등 대부분의 주거 설비가 들어가 있다. 이렇게 전체 공정의 80% 이상을 공장에서 마쳐 건설의 ‘탈현장화(OSC)’를 실현하는 것이 모듈러 공법의 주된 목적이다.
전용면적 21~44㎡로 구성된 주택 내부도 평범한 주택과 분간이 가지 않았다. 집마다 테라스가 설치돼 채광이 충분했고, 집안은 물론 복도·계단·엘리베이터 어디에서도 모듈러를 결합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현장 관계자는 “따로 말씀을 드리지 않으면 입주하시는 분들도 모듈러 주택인 줄은 모르실 정도”라고 말했다.
모듈러 2개를 위아래로 이어붙인 복층도 눈길을 끌었다. 단지의 416가구 중 42개 가구는 35㎡ 면적의 모듈 2개 사이에 계단 통로를 낸 복층 구조로 만들어졌다. 실용적이고 개방적인 공간 활용을 선호하는 젊은 세대의 복층 수요를 고려한 설계다.
2022년 9월 공사를 개시한 이곳은 지난달 준공을 마쳐 현재는 오는 3월 입주를 목표로 청소 등 마무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공사 기간의 절반 이상은 하부 토대 건축에 소요됐다. 해당 단지에서 모듈러 공법이 적용된 범위는 3층부터 7층까지인데, 본격적으로 모듈러를 결합하기에 앞서 지하 4층부터 지상 2층까지의 토대를 전통적인 철근 콘크리트 방식으로 쌓아야 했기 때문이다.
모듈러 공법을 적용한 3층부터는 공사 과정이 훨씬 간단해졌다. 작업자들은 150㎞ 떨어진 전북 군산 소재의 공장에서 트레일러로 실어온 모듈러를 크레인으로 들어 레고 블록처럼 하나씩 쌓아 올렸다. 모듈러 한 칸을 쌓는 데는 약 30분이 소요됐다. 크레인의 균형을 잡아주는 밸런스 빔을 설치하는 데 10분이 들었고, 모듈러를 목표 위치로 들어서 옮기는 데 다시 20여분이 걸렸다.
이렇게 내려놓은 모듈러를 미리 완성한 골조 부위와 연결하고, 상하좌우로 맞닿아 있는 다른 모듈러와 결합하면 일반 주택 못지않게 튼튼한 구조가 형성된다. 이후 각 모듈러에 설치된 수도·전기 등 설비를 건물과 연결하고, 내부에 도배·장판 등 부수적 작업만 거치면 1개 세대가 순식간에 완성된다.
실제로 이곳 현장이 모듈러 작업에 매달린 시간은 100일이 채 되지 않았다. LH에 따르면 UR 1·2블록은 지난해 6월 20일 본격적으로 모듈러를 쌓기 시작해 97일 만에 적층 작업을 마무리했다. 매일 12~15개의 모듈러를 차질 없이 조립한 결과다. LH 관계자는 “지난 여름 장마와 폭염으로 실제 작업 가능 시간이 많지 않았음에도 공정이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고 말했다.
모듈러 공법의 강점은 이처럼 건설 공정을 간소화하고 공사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건설업계에서는 현장 인력 고령화로 인한 생산성 저하와 건설 품질 저하 우려가 두드러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건설업 근로자 중 50대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3년 기준 67.9%에 이르렀다. 여기에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외국인 근로자 비중도 높아지면서 잘못된 시공 위험도 갈수록 커지는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현재도 모듈러 공법이 기존 철근 콘크리트 공법 대비 공사 기간을 약 20~30% 단축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현장에 투입해야 하는 인력 역시 줄어든다. 자동화·표준화된 공장 설비로 부품을 생산하는 만큼 균일한 품질이 유지된다는 점도 장점이다. 30년마다 재건축 논의가 나오는 일반 아파트와 달리 주기별로 부품만 교체하면 최대 100년까지 사용 가능한 ‘장수 주택’이라는 점도 매력을 더한다.
국내에서도 모듈러 주택 사업은 점차 확대되고 있다. LH는 지난해 11월까지 국내에서 총 7개 지구, 918가구의 모듈러 주택 사업을 추진했다. 그중 사업이 완료된 지구는 부산 용호·천안 두정 등 총 4개 지구(222가구)다. 지난달에는 세종 5-1생활권 L5블록에도 설계·시공 전 과정에 스마트 건설기술을 반영하는 ‘스마트 턴키’ 방식으로 모듈러 주택을 발주해 착공했다. 같은 달 의왕에서도 민간참여사업으로 22층 높이의 국내 최고층 모듈러 주택이 착공됐다.
다만 아직까지는 시장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아 기존 공법보다 단가가 높다는 점이 발목을 잡는다. 현재 국내 현장에서 모듈러 공법을 적용하려면 통상보다 약 30% 많은 공사비가 필요하다. 기술력도 해외 주요국에 비하면 부족하다. 현재 국내에서 완공된 모듈러 주택은 최고 층수가 13층으로 최고 층수가 30~40층을 넘나드는 미국·영국과는 격차가 있다.
LH는 모듈러 주택 발주량을 2023년 연간 1000호에서 2026~2029년 연간 3000호까지 확대해 OSC 시장을 지원해 나가기로 했다. 이를 통해 2030년까지 공사 기간을 기존 공법의 절반으로 단축하고 공사비도 기존 공법 수준으로 끌어내리겠다는 것이 LH의 목표다.
세종=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