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이 우크라이나군 드론을 유인하는 ‘인간 미끼’로 쓰이고 있는 정황이 드러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특수작전군이 최근 공개한 북한군 병사 ‘정경홍’의 일기장을 근거로 “북한군이 세뇌를 당해 끔찍한 작전에 동원됐다”고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21일 쿠르스크주 포그레브키 인근에서 우크라이나군과 교전하다가 동료 2명과 함께 전사한 정경홍의 일기장에는 드론 대응 전술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한 충성 맹세 등이 담겼다.
일기장에는 3명이 한 조를 이뤄 1명이 드론을 유인하면 나머지 2명이 정밀사격으로 이를 격추하는 전술이 그림으로 묘사됐다. 드론을 유인하는 역할을 맡은 병사는 가만히 서 있어야 한다는 내용도 적혀 있다.
우크라이나군의 드론 촬영 영상과 군사 전문가들에 따르면 북한군은 장갑차나 포병 지원 없이 전선에 투입되고 있다. 눈 덮인 벌판을 도보로 이동하거나 눈에 잘 띄는 짙은 색 군복을 입은 채 작전을 수행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미국과 우크라이나 정부 관계자는 파병 북한군의 사망률이 높다며 “러시아가 생존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북한군을 배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경홍의 일기장에선 김정은에 대한 충성심도 드러났다. 그는 “목숨을 바쳐서라도 최고사령관의 명령을 주저 없이 수행하겠다. 김정은 특수부대의 용맹과 희생을 전 세계에 보여주겠다”고 적었다. 2019년 탈북한 북한군 출신 류성현씨는 “정권에 대한 충성심을 표현한 것은 전투에서 죽더라고 영광을 누릴 유산을 남기려는 시도”라고 해석했다.
올렉산드르 킨드라텐코 우크라이나 특수부대 대변인은 WSJ에 “북한 병사들은 이념적 사고방식과 세뇌로 인해 항복이라는 개념이 없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군 관계자들에 따르면 부상당한 북한 병사들이 항복 대신 자살을 택하거나 동료 병사에게 사살되는 사례가 빈번하다.
최민우 기자 cmwoo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