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서부 쿠르스크 전장에서 북한군 26세 저격병과 20세 소총병이 우크라이나군에 생포됐다. 이들은 한국 국가정보원의 통역 지원 속에 우크라이나 보안국(SBU) 조사를 받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1일(현지시간) 엑스에서 “북한군 2명을 쿠르스크에서 생포했다”며 “모든 전쟁포로처럼 이들도 필요한 의료 지원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철문으로 격리된 수용소 내 2층짜리 침상에서 각각 머리와 팔에 붕대를 감고 휴식 중인 아시아인 남성 2명의 사진과 러시아 투바공화국에서 발급된 신분증 사진도 공개했다.
키이우인디펜던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북한군 포로 중 1명은 2005년생 소총병이다. 하지만 투바공화국 신분증에서 그의 신원은 1994년생 ‘안톤 아리우킨’이라는 이름으로 기재됐다. 그는 SBU 조사에서 “지난해 가을 러시아에서 1주일간 훈련할 때 신분증을 받았다”며 “전쟁이 아닌 훈련을 위한 파견이라고 믿었다”고 말했다.
다른 포로 1명은 1999년에 태어나 2016년 입대했고 저격병과 정찰병으로 복무했다고 진술했다. SBU는 “이 포로의 경우 턱 부상으로 말을 하지 못해 필담으로 조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공개한 사진 중에는 붕대를 감아 턱을 고정하고 음료를 빨대로 마시는 병사가 등장한다.
키이우인디펜던트는 “SBU의 북한군 포로 심문은 한국어 통역을 지원한 국정원의 협력 속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국정원도 12일 “우크라이나군이 지난 9일 쿠르스크에서 북한군 2명을 생포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이들 포로가 ‘전투 중 상당한 병력 손실’을 증언했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SBU와 긴밀한 협조를 통해 북한군 포로 관련 정보를 지속 공유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가 북한군 포로를 생포해 조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말 젤렌스키 대통령이 “북한군 포로를 붙잡았지만 심각한 부상으로 모두 사망했다”고 밝힌 바 있다. 안드리 시비하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이날 “북한군 포로들을 처음으로 생포했다. 이들은 용병이 아닌 정규군”이라며 “안보로 연결된 유럽과 인도·태평양이 모스크바와 평양을 압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북·러 간 협력의 중요한 정보가 생포된 북한군 포로 조사에서 나올 것”이라며 “북한군은 그동안 우크라이나군에 붙잡혀도 자결을 택했다”고 보도했다. 한 우크라이나 특수부대원은 WP에 “북한군은 러시아군과 다르게 옆에서 동료가 죽거나 다쳐도 무시하고 돌격했다. 사고방식과 접근법이 다르다”며 “한 북한군은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 수류탄을 터뜨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전했다.
북한군 포로들의 향후 신병 처리 방향은 불투명하다. 생포된 포로 2명은 출신국을 밝히고 전쟁포로 지위를 얻으면 제네바협약에 따라 북한이나 러시아로 송환이 가능하다. 반면 북한이나 러시아가 자국군 소속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이들은 ‘불법 전투원’으로 간주돼 전쟁포로 지위를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
이들이 한국 귀순을 포함한 제3국 망명을 원해도 성사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그동안 러시아군에 붙잡힌 자국 병사들의 생환을 위해 북한군도 생포하면 포로 교환에 동원할 가능성을 시사해 왔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