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촌 임시주거시설엔 1인실뿐… “가족 생이별할 판”

입력 2025-01-12 18:38 수정 2025-01-13 10:49
지난 12일 서울 영등포구 고가도로 아래 영등포 공공주택지구 정비사업 기간 주민들이 머무를 임시주거시설이 지어져 있다.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에 사는 김성식(71)씨는 졸지에 20년간 같이 살아온 아내와 떨어져 생이별할 처지가 됐다. 쪽방촌 재개발 공사 때문에 이르면 이달 말부터는 살던 곳을 떠나 임시주거시설로 옮겨야 하는데 이곳에는 1인실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씨는 12일 “여기서 가족 단위로 사는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할 판”이라며 “방을 두 개 쓰자니 보상금으로 임대료도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등포역 일대 쪽방촌을 재개발해 주민들의 재정착을 돕겠다는 취지로 계획된 공공주택지구 정비사업이 약 5년 만에 본격화됐지만 담당 기관들의 ‘행정편의주의’로 잡음이 불거지고 있다. 주민들은 공사 기간에 지낼 임시주거시설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된 설명회 없이 일방적으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곳 주민들은 첫 입주 목표해인 2027년까지 최장 3년간 임시주거시설에서 지내야 한다.

이번 재개발 사업계획은 정부가 2020년 추진계획을 발표했지만 그동안 토지 보상 등의 절차가 마무리되기까지 꼬박 4년이 걸렸다. 지난해 12월에야 쪽방촌 주민들이 머물 수 있는 임시주거시설 공사가 시작됐다. 그렇게 마련된 2층짜리 컨테이너 3동이 1월 말 준공을 앞두고 있지만, 정작 주민들은 볼멘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개선된 시설을 지어주겠다던 약속과 달리 임시주거시설이 3평 남짓한 1인실 위주 방과 공용 주방 및 화장실 등으로 구성된 데 대한 불만이 크다. 30년간 쪽방촌에서 살았다는 강동기(70)씨는 “몸이 아파서 침대 생활 하는 노인을 모시고 사는 아들도 있고, 공용화장실을 이용하기 힘든 장애 아동을 키우는 집도 있다”며 “이런 사람들이 임시주거시설에서 어떻게 살 수 있겠냐”고 말했다. 조상현(55)씨도 “임시주거시설 입구에 전부 턱을 만들어놔서 전동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들어가지도 못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주를 앞둔 영등포역 인근 쪽방촌 주민들이 공청회를 요구하는 현수막을 걸어놓은 모습.

영등포 쪽방촌 재개발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 서울 영등포구가 공동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임시주거시설 건립에는 서울시도 참여한다. 쪽방촌 주민들은 서울시립영등포쪽방촌상담소를 통해 꾸준히 공청회를 요구해왔으나, 단 한 차례도 이뤄진 적 없었다고 주장한다. 김형옥 영등포쪽방촌상담소 소장은 “공사 기간이 길어지며 담당자도 바뀌고 주민들 요구는 잊힌 것 같다”며 “주민들은 관련 정보를 알음알음 퍼즐 맞추듯 하고 있는데 사업 주체들은 강 건너 불구경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업을 총괄하는 국토교통부가 나서서 교통정리를 해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재개발 사업을 담당하는 지자체와 기관은 공청회 개최 책임을 서로 떠넘기고 있다. 서울시와 영등포구청 측은 “공청회는 시설 관련이므로 LH의 소관”이라는 취지로 답했다. 반면 LH 관계자는 “공동사업이므로 서울시와 SH공사 간 협의가 필요하다”며 “그간 서울시와 공청회에서 협의할 안건이 정리되지 않아 할 수가 없었다. 주민들의 요구를 거부한 건 사실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글·사진=김승연 기자 ki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