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정부든, 어떤 정치 상황이든 에너지 정책은 안정적, 경제적, 저탄소 달성이란 삼각 딜레마(트릴레마·Trilemma)를 해결하는 것이 핵심 과제입니다.”(박종배 건국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최근 탄핵 정국과 미국 ‘트럼프 2기’ 출범으로 정부의 에너지 정책도 대대적 변화를 맞을 것이란 시각이 많다. 특히 현 정부가 2023년 9월 국제 사회에 제시한 ‘무탄소에너지(CFE)’ 이니셔티브의 지속가능성에도 물음표가 붙은 상태다. 무탄소에너지는 원자력, 수소 등 온실가스 배출이 없는 에너지를 의미한다.
국민일보는 지난달 26일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에너지 산업을 둘러싼 대내외 불확실성에 대한 진단과 더불어 바람직한 정책 방향을 주제로 대담을 진행했다. 대담은 박 교수를 비롯해 양의석 CF연합 사무총장과 서울과기대 에너지정책학과 이상준·유승훈 교수 4명이 참여했다.
-정치 상황과 맞물려 에너지 정책 변화 우려가 큰데
△양 사무총장=CFE 이니셔티브를 현 정부가 유엔총회에서 제시했다보니 정치적 혼란기에 퇴보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국내적 관점일 뿐이다. 해외 여러 기관과 만나고 있지만 그런 시각은 전혀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 국가도 원전을 중심으로 무탄소 에너지 정책이 더욱 거세지고 있고 북유럽 국가들도 원전을 검토하는 상황인데 한국만 나 혼자 거꾸로 갈 수는 없다.
△이 교수=정국이 혼란스러울수록 다양한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기 마련이다. 에너지 분야에서도 여러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박 교수가 언급한 안정적, 경제적 공급과 저탄소 달성이란 세 가지 키워드의 균형을 맞추는 것은 어떤 정부든 공통적으로 추구해 왔다. 정치 진영과 별개로 실용주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유 교수=재생에너지는 송전선로 부족 문제로 더 이상의 확장이 어렵다. 어느 정부든 전기 요금 상승을 막기 위해 원전에 일정 부분의 역할을 맡길 수밖에 없다. 무탄소 에너지라는 큰 흐름은 어떤 정부라도 그 방향을 바꾸긴 쉽지 않을 것이다.
△박 교수=에너지 정책은 기업·가정이란 수요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이미 국내 산업용 전기 요금은 미국보다 높고, 가격이 비싼 유럽 수준에 가깝다. 원전을 에너지 정책 포트폴리오로 가져가지 않으면 국내 산업 경쟁력이 상당한 제약을 받게 될 수 있다.
-해외 에너지 정책 동향은 어떤가
△유 교수=빅테크 기업들이 어떻게 하는지 보면 된다.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구글 등 글로벌 기업들은 재생에너지뿐 아니라 24시간 안정적 전기 공급을 받을 수 있는 원전이나 수소, 천연가스 발전에 눈을 돌리고 있다. 천문학적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양 사무총장=소형모듈원전(SMR)에 대한 전환도 빨라지고 있다. 중국은 이미 SMR을 상용화한 상태다. 현재 SMR 기술을 둘러싼 글로벌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한국도 알아야 한다.
-트럼프 2기 에너지 정책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이 교수=트럼프의 대표 키워드가 바로 ‘불확실성’이다. 에너지 측면에서도 기회는 살리고 위협은 대응하는 포트폴리오가 필요하다. 다양한 기술과 다양한 에너지원 확보가 트럼프 시대를 넘어가는 최선의 전략이라고 본다.
△유 교수=화석연료 확대는 불가피할 것이다. 트럼프 2기를 따라가기만 한다면 4년 뒤 (트럼프 퇴임 후) 온실가스 감축 압력에 직면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기조와 별개로 국내 온실가스 감축 노력은 게을리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양 사무총장=일본과 한국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하에 국제 연대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원전 등 에너지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바이든 행정부에 이어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는 이런 형태의 국제 연대를 더욱 강하게 가져갈 것으로 본다.
-한국의 바람직한 에너지 정책 방향은
△이 교수=지구상 어떤 나라도 재생에너지로 100% 무탄소 전력 달성은 불가능하다. 날씨 등 환경 변화에 구애 받지 않는 안정적 에너지원을 다양하게 확보해야 한다.
△박 교수=그간 탄소 중립이란 목표와 수치 달성에만 치중된 측면이 없는지 돌아봐야 한다. 국내 자체 기술 개발과 인력 양성에 더욱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또 국내 에너지 산업에 가장 시급한 것이 송전망을 튼튼히 하는 것이다. 정치 상황과 별개로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이 조속히 입법돼야 한다.
△유 교수=한국 정부와 민간 조직의 힘만으론 CFE 이니셔티브의 국제적 확산은 쉽지 않을 수 있다. 현실적으로 일본과 손을 잡고 글로벌 규범화에 나서야 한다. 올해 한·일수교 60주년을 맞아 공동 의제 논의 과정에 CFE가 포함돼야 한다.
△양 사무총장=한국은 CFE를 계기로 처음 국제 이니셔티브를 시작해보고 있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과 에너지 정책 연대를 이루는 경험이 필요하다.
정리=양민철 김윤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