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년도에 프로가 된 최경주입니다. 여기서 근무하게 돼 인사드립니다.” “누가 여기서 일하래.”
골프연습장 사장에게 채용이 돼도 실질적인 운영자인 헤드 프로에게 인사를 하면 찬바람이 쌩 불었다. 선배의 소개를 통하는 것이 관례인데 이를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관례를 따르고 싶어도 완도 출신이 없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 생각보다 심한 텃세 때문에 배겨 내기가 어려웠다. 이런 이유로 일 년에 열 곳을 넘게 전전하기도 했다.
프로만 되면 인생의 탄탄대로가 열릴 줄 알고 열심히 했건만 실망스러웠다. 그렇다고 고향에 내려갈 순 없었다. 이끌어 줄 사람이 없다면 스스로 헤쳐 나가면 된다. 오기가 나서 죽기 살기로 연습에 매달렸다.
“경주야, 연습 그만하고 레슨 좀 해.” 연줄 없이 들어온 신입 프로가 밤낮없이 공만 치니 모두에게 눈엣가시였던 것 같다. 보다 못한 동료가 눈치껏 하라고 말리기도 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가 어려워 가슴에 응어리가 맺혔다. 아무도 배려해주지 않는 상황이 서럽고 힘들었다. 프로에 대한 기대가 컸던 탓인지 연습생 때보다 더 심적으로 힘들었다.
생존 경쟁이 치열한 프로의 세계에서는 절대 남의 도움을 기대하면 안 되고 스스로 강해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일찌감치 깨달았다. 스스로 꽃피우지 않으면 비싼 값에 팔리기는커녕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뽑힐 뿐이라고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지금 돌아보면 당시에 아무도 보살펴 주지 않았기 때문에 강한 정신력을 갖고 이를 악물고 실력을 쌓을 수 있었다. 결국 모든 과정이 나를 성장시키는 좋은 밑거름이 됐지만 상황 자체가 좋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결과가 좋다고 해서 과정도 좋다고 할 수 없으니 말이다.
인생은 수평선과 같다. ‘프로’라는 수평선을 향해 열심히 달려서 도착해 보니 출발점인 ‘연습생’과 별반 다른 게 없었다. 멀리서 수평선을 봤을 때는 내가 있는 진흙탕과는 다르게 맑고 깨끗해 보이지만 죽어라 열심히 노력해 목표 지점에 도달한 그곳에도 진흙 천지일 수 있는 것이다.
수평선은 추한 모습을 밑바닥에 감추고 환하게 웃으며 손짓하는 자만이고 교만이다. 프로는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도전해야 하고 그 힘으로 겸손해져야 한다. 긍정적인 마인드는 필수다. 내게 닥친 현실이 힘들어도 참고 이겨 내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 지금의 고통이 저 멀리 수평선 아래 숨어있는 더 강력한 고통을 이겨낼 힘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끝까지 가야 했고 멈추지 않고 도전해야 했다.
결국 텃세가 심한 서울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정리=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