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개헌 결단 땐 정치적 이득… 反이재명 정서 해소에 도움”

입력 2025-01-12 18:58
정치 일선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원로 정치인들은 상당수가 “지금이 개헌의 적기”라고 말한다. 12·3 비상계엄 선포로 후퇴한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탄핵 정국으로 혼란스러운 현 정치 상황을 매듭짓기 위해서라도 개헌을 통한 권력 구조 개편이 절박하다는 얘기다. 동시에 선거제 동반 개편 주문도 나온다. 다만 개헌은 만병통치약이 아니고, 중구난방 개헌론 속에서 합의안을 도출한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국민일보는 여야 원로인 정대철 헌정회장과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을 차례로 만나 ‘왜 지금 개헌을 말하는지’에 대해 의견을 들었다. 두 원로 모두 ‘민주주의의 복원과 발전’을 개헌의 핵심 목적으로 제시했다.

정대철 헌정회장이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회관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정 회장은 “개헌은 시대적 소명”이라며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위해 꼭 해야 할 정치개혁 가운데 가장 절박하고 시급한 주제”라고 강조했다. 이병주 기자

정대철 헌정회장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향해 “개헌을 결단하면 ‘좋은 지도자’가 될 것”이라며 개헌 논의에 동참해 줄 것을 촉구했다. 정 회장은 특히 “반이재명 정서가 적지 않은 상황에서 이 대표로서도 개헌을 하는 게 정치적으로 득이 될 수 있다”며 “개헌 논의 때문에 대선을 비롯한 정치 일정이 지연되지도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회장은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회관에서 진행한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개헌은 시대적 소명”이라며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위해 꼭 해야 할 정치 개혁 중 가장 절박하고 시급한 주제”라고 강조했다.

개헌 논의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려면 제1당인 민주당과 유력 대권 후보인 이 대표의 의지가 중요하지만 민주당과 이 대표는 개헌에 거리를 두고 있다. 현 시점에서의 개헌 논의가 자칫 탄핵 정국 ‘물타기용’으로 활용될 것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이에 정 회장은 “혹시라도 개헌 논의가 본격화될 경우 대선 일정이 지연될까봐 민주당이 적극적이지 않은 것 같다”며 “의지만 있다면 권력구조 원포인트 개헌은 60일에서 90일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나아가 개헌 논의가 민주당 측에도 정치적으로 이득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정 회장은 “개헌은 물론 국가를 위해 하는 일이지만, 이 대표를 위해서도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탄핵 정국에서도 ‘이재명 정당’과 ‘윤석열 정당’의 지지율이 비슷하다는 건 민주당이 잘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국민적 지지를 못 받고 있는 것”이라며 “연이은 탄핵 때문에 반이재명 정서 역시 적지 않은데, 이런 상황에서 이 대표가 개헌을 추진한다면 다시 여론이 돌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유력 대권 주자로서 당장 조금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국민의 기대가 큰 ‘정치 개혁’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인다면 중도층의 폭넓은 지지를 받게 될 것이라는 게 정 회장의 설명이다.

그는 이 대표와 면담 일정도 조율하고 있다. 정 회장은 “집권을 생각하는 정치 지도자나 정당은 국가 백년대계와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결단을 내려야 한다”며 “적극적으로 설득해보겠다”고 의지를 보였다. 정 회장은 앞서 지난 10일에는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등 여당 지도부를 만나 개헌 필요성을 거론했다.

전직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헌정회는 지난해 11월 분권형 대통령제(이원집정부제)와 4년 중임제를 골자로 한 개헌안 초안을 발표했다. 대통령 권력 분산에 방점을 찍고 이를 위해 책임총리제, 양원제(상원제 신설), 지방분권 강화가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정 회장은 “집권 세력은 결코 개헌을 원치 않는다. 권력을 잡으면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을 편하게 행사하려는 생각 때문에 현실에 안주하려고 한다”며 “대선 전에 반드시 개헌을 먼저 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정 회장은 “여권 일각에서는 개헌 논쟁을 촉발해 탄핵 정국 종식을 지연시키고 정치 일정을 전반적으로 지연시키려는 의도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현명한 국민은 이러한 불순한 의도를 금방 알아차릴 것이고, 그런 세력은 오히려 역풍을 맞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윤 대통령의 느닷없는 12·3 비상계엄 선포에서 보았듯 모든 국민이 현행 대통령제의 한계와 폐해 가능성을 뼈저리게 느꼈다”며 “제왕적 대통령제를 고쳐 참다운 민주적 권력 구조를 만드는 게 시급한 과제가 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민주당 출신인 나와 전직 의원 모임인 헌정회에 무슨 정치적 의도가 있을 수 있겠느냐”며 “개헌 논의의 순수성과 절박성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헌정회는 앞으로도 정치권이 개헌 논의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역할을 다하겠다는 방침이다. 전직 국회의장과 국무총리, 여야 정당 대표가 모이는 정치 원로 간담회도 정례화할 계획이다. 지난달 31일 첫 모임에는 원로 12명이 참여했는데, 모두가 대선 전 개헌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고 한다. 정 회장은 “14일에 또 간담회를 여는데 이번에는 우원식 국회의장도 참석한다”며 “정치 원로들이 앞으로도 계속 주요 인사들을 만나며 개헌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