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 가치외교를 위한 변명

입력 2025-01-13 00:31

지난 12월 비상계엄령 선포와 해제, 그리고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까지의 과정에서 가치외교를 두고 논란이 불거졌다. 야당이 발의한 윤석열 대통령 1차 탄핵소추안에 들어갔다가 2차안에는 빠진 내용이 있다. “소위 가치외교라는 미명하에 지정학적 균형을 도외시한 채 북한과 중국, 러시아를 적대시하고 일본 중심의 기이한 외교정책을 고집”했으며 이로써 “동북아에서 고립을 자초하고 전쟁 위기를 촉발했다”는 문구였다.

이 문구는 조국혁신당이 작성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민주당은 탄핵을 급히 추진하느라 해당 문구가 1차 탄핵안에서 삭제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섣부른 문구로 인해 향후 한국 외교 방향에 대한 주변국의 의심 어린 눈길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또한 민주당의 해명과 별개로 가치외교에 관한 평가도 필요하게 됐다.

우선 계엄령 선포로 윤석열정부가 그동안 강조한 자유 개념의 허구와 모순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점을 분명히 해두자. 윤 대통령은 자유를 반복해 말해 왔지만, 사실상 정변 시도는 자신이 강조한 자유의 가치를 정면으로 위배했다. 이전에도 그가 말했던 자유는 퇴행적인 반공 자유였다. 반공이 곧 자유라는 냉전적 사고와 자유 본연의 의미 왜곡이 계엄령 사태로 더 분명해졌을 뿐이다.

가치외교를 비판하는 이들은 가치와 이념에 몰입하다 보니 외교적 유연성이 상실됐다고 지적한다.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강조하면서 미국과 일본에 경도된 외교를 펼치게 됐고 중국과 러시아, 나아가 북한과 같은 비자유주의적 주변국과의 관계는 경시했다고도 한다. 가치외교의 비판론자들은 대신 실용과 국익 외교를 강조한다. 이들에게 영국의 외무상이었던 파머스턴 경이 1848년 의회 연설에서 남긴 유명한 말은 외교의 금과옥조와도 같다. 영원한 동맹도 영원한 적도 없으며, 오직 이익만이 영원하고 그러한 이익을 따르는 것이 영국의 의무라는 말이다.

하지만 파머스턴 경의 이 말을 우리 외교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다. 당시 영국은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 수준의 강대국으로서 ‘영광의 고립(Splendid Isolation)’으로 불리게 된 정책을 고수했다. 영국의 이익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는 한 섣불리 다른 나라와 지역에 개입하는 것을 자제하면서 행동의 자유를 보전하는 것을 중시했다. 이익만이 영원하다는 파머스턴 경의 언급은 폴란드에서의 자유와 독립을 향한 운동을 영국이 왜 지원하지 않는가 하는 질의에 답을 하면서 나온 것이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세계적 위상이 크게 높아진 것이 사실이지만 19세기 영국에 비할 바가 아님은 분명하다.

오히려 팍스 브리태니커가 저물고, 패권국 지위를 상실한 다음 영국은 20세기 후반 이후 영광의 고립이 아니라 ‘특수관계(special relationship)’를 적극적으로 내세우며 새로운 패권국으로 등장한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려 했다. 미국과 공유하는 언어와 문화 그리고 자유민주주의 등의 가치를 대서양동맹의 유대를 강화하는 접착제로 활용했고, 이를 통해 영국의 세계적 위상 강화를 추구했다.

윤 대통령의 자유 개념과 행동 사이의 명백한 모순과 일탈에도 불구하고 가치외교가 지닌 실용성까지 모두 부정할 필요는 없다. 이념 경도를 피하면서 비자유주의적 주변국과의 관계도 적절히 관리하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공동의 가치를 동맹 유대의 매개로 활용하고 이를 통해 우리의 이익을 증진하려는 시도는 자연스러웠다. 다만 재집권을 목전에 둔 도널드 트럼프는 조 바이든 대통령과 달리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가치에 무게를 두지 않는 듯하므로 우리의 대미 접근법에 다소간의 조정은 불가피해 보인다.

마상윤 가톨릭대 국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