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베를린의 개들

입력 2025-01-13 00:35

베를린에서는 어디에서나 개를 볼 수 있다. 거리는 물론이거니와 지하철과 쇼핑몰, 카페와 음식점 등 대부분의 실내에 개와 동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집 강아지는 이곳에 온 뒤로 특히 지하철 타는 일을 좋아하게 됐다. 지하철을 타면 모르는 사람들이 예뻐해주고, 평소의 산책길과 다른 재미있는 곳에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 모양이다. 길에는 산책하는 개의 배설물을 버리기 위한 쓰레기통이 즐비하다. 물론 이 쓰레기통의 유지 및 관리를 위해 개 한 마리당 매년 세금을 내야 한다. 집 근처에는 한 시간을 걸어도 부족할 만큼 큰 규모의 잘 관리된 숲이 있는데 모두 강아지를 위한 공간이다. 훈련된 개들은 목줄 없이 그곳을 산책할 수 있다. 어렸을 때부터 고강도의 훈련을 받는 시스템이 구축돼 있어 대부분 개들은 다른 개나 사람에 대해 호의적이거나 무관심하다. 반가움에 다가오더라도 거절 의사를 표하는 순간 바로 거리를 두고 멀어진다. 지나가는 행인들은 함부로 다른 개를 만지거나 위협하지 않는다.

베를린에서 단 한 마리의 길고양이도 보지 못해 의아했다. 알고 보니 모두 유기동물 보호 센터에 있다고, 유기동물 보호 센터 역시 넓은 실내외 공간과 충분한 인력을 갖춰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서울에서 아프고 버려진 채 울고 있던 2개월 고양이를 구조해 살고 있는 나로서는 놀라운 이야기였다. 동물은 지구라는 공간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동등한 생명체지만 인간이 구축한 공간에서는 가장 권리를 획득하기 어려운 존재들이다. 언어를 가질 수 없고, 스스로 의견을 표할 수 없기에 인간에 의해 수단화된다. 권리의 차원에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동물들이 대우받는 곳에서 인간의 삶 역시 체제에 의해 쉽게 보호되는 듯하다. 모든 버스가 휠체어가 쉽게 타고 내릴 수 있는 저상버스이며, 모든 역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고, 휠체어를 위한 공간이 어디에나 확보되어 있는 이곳의 공간들을 경험하며 그런 생각을 했다.

김선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