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정치권이 탄핵 정국을 더욱 혼탁하게 하는 ‘가짜뉴스의 진앙’이 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각자 지지층만 바라보는 여론전에 몰두하면서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전파하거나, 출처 불명의 제보를 근거로 일단 의혹을 던지고 보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가짜뉴스에 대한 ‘문지기 역할’을 해야 할 공당이 오히려 우리 사회에 불신을 확대 재생산하는 창구 노릇을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여야는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저마다 가짜뉴스 대응에 사활을 걸었다. 국민의힘은 ‘진짜뉴스발굴단’, 민주당은 ‘민주파출소’ 등 별도 태스크포스(TF)까지 만들어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나 허위 정보에 대해 직접 팩트체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들 조직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보는 ‘진짜뉴스’로, 불리한 정보는 ‘가짜뉴스’ 낙인을 찍는 감별사 행태를 보인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앞서 지난 4일 윤석열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열린 탄핵 촉구 집회 도중 발생한 민주노총 조합원의 경찰 폭행 사건을 두고도 여야는 서로 입맛에 맞는 정보만 취사선택해 가짜뉴스 공방을 벌였다.
국민의힘 진짜뉴스발굴단은 사건 이튿날 “민노총 조합원이 경찰을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며 “경찰청 간부들이 민노총의 공권력 유린에 사실상 손 놓은 게 아니냐”는 내용의 입장문을 냈다. 진짜뉴스발굴단은 “현직 경찰로 추정되는 작성자”라며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글 2건을 캡처해 근거로 제시했다. 해당 게시글에는 “우리 직원 머리 맞아서 혼수상태이다” “뇌출혈이 심해 뇌사 판정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등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 담겼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6일 회의에서 “최근 경찰이 시위대에게 맞아 혼수상태가 됐다는 가짜뉴스가 돌고, 국민의힘은 이와 관련한 가짜 논평까지 낸 일이 있었다”며 “국민을 폭도로 몰고 있던데 꼭 신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어 “단순히 고발로 끝내면 안 된다. 금융치료, 즉 손해배상 소송도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경찰에 따르면 집회 현장에서 피해 경찰관은 가해자가 빼앗아 던진 무전기에 머리를 맞아 세 바늘 정도 꿰매는 부상을 입었다. 여당은 민주노총의 불법행위를 부각하기 위해 피해 정도를 과장한 온라인상 게시글을 사실화해 발표하고, 민주당은 또 부상 얘기를 빼고 전체를 가짜뉴스로 규정해 공격한 셈이다.
여야는 최근 윤 대통령 지지율이 40%대를 기록했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놓고도 진위 공방을 벌였다. 민주당은 “문항 설계 자체가 특정한 방향으로 (결과를) 유도한 것으로 판단된다. 여론조사를 통해 여론을 호도하려는 시도”라며 여론조사 업체 고발도 검토하겠다고 나섰다.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 지지율 40%’는 진짜뉴스”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하며 맞불을 놨다.
국민의힘 진짜뉴스발굴단은 지난달 27일 12·3 비상계엄 사태의 핵심 인물인 김용현(구속 기소) 전 국방부 장관 측 입장문을 출입기자단에 그대로 배포했다. 당시 김 전 장관 측은 검찰의 공소 사실을 ‘가짜뉴스’로 취급했는데, 당 차원에서 이를 홍보하며 스피커 역할을 한 셈이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내란수괴의 선전·선동에 앞장서고 있다”며 “진짜뉴스발굴단이라는 내란옹호 부대를 만들어 진짜 사실들을 가짜뉴스로 호도하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여당 내에서도 “당이 김용현 변호인단 확성기인가” 등의 비판이 나왔다.
“신뢰할 만한 제보”라며 별다른 검증 없이 무책임하게 의혹을 제기하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윤 대통령 도주설, 경호처 실탄발포 명령 의혹, 대통령 안가 술집개조 의혹 등이 대표적이다. 계엄 사태 관련 진상규명 작업의 일환으로 평가될 만한 측면도 있으나, 무분별한 의혹 투척이 오히려 실체적 진실 규명을 어렵게 하고 국민적 혼란을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안규백 민주당 의원은 지난 8일 KBS라디오에서 “제보를 받았다”며 “제가 들은 정보로는 (윤 대통령이) 이미 용산을 빠져 나와 제3의 장소에 도피해 있다고 들었다”고 도주설에 불을 지폈다. 대통령실, 경찰, 여당 의원 등이 반박하며 의혹 제기가 진실공방으로 번지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 추정 인물이 관저 내에 있는 장면이 한 매체 카메라에 포착되면서 도주설은 이내 사그라들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5일 기자회견을 열어 “중요한 제보를 받았다”며 “박종준 대통령경호처장으로부터 (체포영장 집행 저지 중) 몸싸움에서 밀릴 경우 공포탄을 쏘고, 안 되면 실탄도 발포하라는 명령이 하달됐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윤건영 의원은 지난달 24일 MBC라디오에서 윤 대통령 측이 정권 초기 삼청동 안가를 ‘술집 바’ 형태로 개조하려 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윤 의원은 “신뢰할 만한 제보였다”면서도 “대통령 안가라는 특수성 때문에 사후 취재나 검증을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후 경호처는 두 사안에 모두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정치권의 아전인수식 팩트체크 행태는 강성 지지층을 결집하는 등 정파적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의도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양당은 유리한 것에는 소극적으로, 불리한 것에는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편향이 들어간 팩트체크는 정치 양극화를 더 극대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어 “갈등을 풀고 해소하는 게 정치인의 역할인데, 탄핵 정국에서 오히려 강성 지지층에 소구하는 정보를 전파해 자기 진영을 더욱 동원하고 선동하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배정근 숙명여대 미디어학과 교수는 “공당이 부정확하거나 왜곡된 정보를 사실처럼 전파하는 것은 선전·선동이고 사실 왜곡”이라며 “정치인들이 공적 담화의 중요성에 대해 너무 쉽고 가볍게 여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우진 이강민 기자 uz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