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이 ‘내란 특검법’ 재의 부결 하루 만에 수정안을 전격 발의하며 속도전에 나섰다. 외환 혐의를 수사 대상에 추가하는 대신 논란이 됐던 특검 추천 권한을 제3자인 대법원장에게 부여하는 방식으로 법안을 구성했다. 수사 기간과 인력 등도 감축했다. 정부·여당이 독소조항이라고 지적하며 변경을 요구해온 사안을 대폭 수용해 반발의 여지를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야6당 원내 관계자들은 9일 국회 의안과에 이 같은 내용의 ‘윤석열 정부의 내란·외환 행위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을 제출했다.
수정안은 전날 본회의 재표결에서 부결 폐기된 종전 안과 비교해 상당 부분 달라졌다. 핵심 쟁점으로 꼽혔던 특검 후보 추천권은 야당이 아니라 대법원장이 갖도록 했다. 대법원장이 추린 인사를 야당이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비토권’ 규정도 없앴다. 아울러 군과 대통령비서실, 대통령경호처 등이 군사 비밀 등을 이유로 압수수색을 거부할 순 없지만 언론 브리핑에선 관련 사항을 빼도록 명시했다.
특검 자체의 몸집도 줄었다. 기존 안은 수사 기간을 기본 90일로 규정했으나 이번 법안은 70일로 단축했다. 수사 인력도 기존 205명에서 155명으로 줄였다. 김용민 원내수석부대표는 “내란을 신속하게 진압해야 하는 상황에서 불필요한 정치적 논란을 최소화해 신속히 통과시키기 위해 수정안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앞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는 지난달 31일 국무회의에서 ‘쌍특검법’(내란·김건희 특검)에 대한 재의요구권을 행사하면서 “특검 후보 추천권을 야당에만 부여해 헌법상 권력분립 원칙에 위반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장이 특검을 추천했던 ‘이명박 BBK 주가조작 특검법’ 사례를 거론했다. 야당의 개정안이 따른 방식이다.
다만 이번 특검은 수사 범위 측면에선 외환 혐의를 추가해 내란만 다뤘던 기존 특검법보다 확장됐다. 새 법안은 특검 수사 대상에 ‘해외 파병과 무인기 평양 침투 등을 통해 무력 충돌을 유도·야기하려 한 혐의’를 명시했다.
야당은 이번 수정을 통해 정부·여당이 특검법에 반대할 명분을 없앴다고 강조했다. 황운하 조국혁신당 원내대표는 “야6당이 대승적 결단을 통해 시빗거리를 제거한 만큼 여야 합의로 처리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도 “발의 명단을 가리고 보면 국민의힘에서 발의한 법이라고 해도 믿을 수준”이라고 말했다.
야당은 국민의힘이 이날 쌍특검법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한 데 대해선 경계했다. 김 수석부대표는 “(야당 안에) 합류하는 것도 방법이고, 그게 아니라면 여당 안을 오늘이라도 발의하라. 얼마든 폭넓게 논의하겠다”면서도 “시간을 끌기 위해 발의를 늦추는 것엔 응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선을 그었다. 야당은 오는 1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이르면 14일, 늦어도 16일엔 본회의에서 새 특검법을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송경모 기자 s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