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없고 다리 절어도… 이것만 착용하면 ‘아이언맨’

입력 2025-01-09 18:27
이상호 ‘만드로’ 대표이사가 8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 사우스홀에 전시된 자사의 의수 제품을 작동하고 있다. 분홍색 근전도 센서를 착용한 후 근육을 움직이면 기판이 빛을 낸다.

이상호(44) 만드로 대표이사는 10년 전 3D 프린팅 커뮤니티에서 동갑내기인 1981년생 절단 장애인이 올린 글을 우연히 읽었다. ‘4000만원이나 하는 의수를 살 돈이 없다’는 글을 읽고 이 대표는 자신이 갖고 있는 기술로 의수를 만드는 회사 만드로를 창업했다. 재능 기부로 시작한 회사는 10년 만에 중국 기업들로부터 인수 제의를 받는 스타트업으로 성장했다.

8일(현지시간) 만드로는 ‘CES 2025’가 열리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 사우스홀 한쪽에 자리잡고 있었다. 경기도 부천산업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CES에 참가한 만드로는 최소 크기인 2.82평짜리 부스를 배정받았지만 그 안에 전시된 기술들은 지난 10년간의 노력을 가득 담고 있다.

만드로의 대표 제품은 전자 의수다. 전자 의수는 절단 부위 위쪽에 근전도 센서를 착용한 뒤 센서가 근육의 움직임을 읽으면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손가락 로봇을 작동하는 원리다. 일반적인 의수는 모터가 손바닥에 들어 있어 크기가 크다. 반면 만드로의 전자 의수 ‘마크7’은 모터가 손가락 끝부분에 달려 있다. 이를 통해 크기를 줄이는 것은 물론 손가락 한두 개가 절단된 사람들을 위한 의수 제작도 가능해졌다.

가격 경쟁력도 뛰어나다. 일반적으로 휴머노이드용 손은 개당 1000만원을 호가하지만 만드로 제품은 400만원대다. 가격이 저렴한 이유를 묻자 이 대표는 자신의 명함에 적힌 ‘돈이 없어서 전자 의수를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문구를 보여줬다. 이는 만드로의 비전이자 이 대표의 꿈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대부분 기술을 자체 개발하며 가격을 꾸준히 낮추는 게 목표다.

만드로의 의수 제품들.

이 대표는 “개막 후 많은 바이어들이 부스를 방문했지만 의수가 목적인 이는 없었다”고 전했다. 대부분이 휴머노이드 로봇 관련 업체 사람들이었다. 이 대표는 “휴머노이드 로봇의 손은 대부분 우리 제품보다 크고 투박하다. 많은 업체가 ‘손만 따로 구매할 수 있느냐’고 문의한다”고 했다. 특히 중국 로봇 업체들이 많이 찾았다. 그는 “중국 업체들이 회사를 팔거나 중국으로 옮기라는 제안을 해왔지만 그럴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만드로를 비롯한 ‘K로봇’의 인기가 뜨거웠다. 7일 CES 2025 스타트업 전용관인 ‘유레카파크’에 위치한 위로보틱스 부스 체험이 시작되자 순식간에 10명 이상의 관람객이 줄을 섰다. 웨어러블 로봇 ‘윔(WIM)’을 직접 입어보기 위해서다. 윔은 허리와 두 허벅지에 30초 내로 간단하게 연결할 수 있는 1.6㎏짜리 초경량 보행보조 로봇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알렉스(78)도 여섯 번째로 줄을 섰다. 고령에 왼쪽 무릎이 좋지 않아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이 고역이었던 그는 윔을 입고 부스에 설치된 계단 조형물을 오르내린 뒤 두 엄지를 치켜들었다. 알렉스는 “평상시에는 천천히 걸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 로봇을 착용하자 좀 더 정상적으로 걸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내 출시 6개월 만에 400대 이상 판매 기록을 달성한 위로보틱스는 올해 미국 진출을 앞두고 있다. 이연백 위로보틱스 대표이사는 ‘인식 전환’에 가장 공을 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보행보조 로봇은 몸이 불편한 이들만 착용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이 대표는 “재활 목적으로 쓰이던 웨어러블 로봇을 무게와 사용성을 혁신하면 일반인도 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며 “보행보조가 필요한 노인뿐만 아니라 근무 환경이 고된 산악구조대나 환경미화원, 그리고 등산객까지 모두 사용 가능한 로봇”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윔을 체험하는 관람객 모습을 10분 넘게 지켜보던 백발의 다니엘(68)도 “이 로봇을 보니 고관절에 문제가 있어 거동이 불편한 75세 누나가 생각난다”며 “출시되는 날을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라스베이거스=글·사진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