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의원들이 대통령경호처를 폐지하거나 경호처장의 광범위한 지휘권을 제한하는 내용의 ‘대통령경호법’(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경쟁적으로 발의하고 있다. 경호처가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인간 벽’을 구축해 저지하는 등 윤 대통령 수사의 가장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불만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경호처가 사실상 대통령의 사병(私兵)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게 야당의 지적이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윤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 실패 이후인 지난 6일부터 9일까지 나흘간 모두 8건의 대통령경호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4일 비상의원총회에서 “경호처의 체포영장 집행 방해는 제2의 내란이다. 경호처를 해체하고 다른 나라들처럼 경호업무를 타 기관으로 이관해야 한다”고 발언한 뒤 관련 법안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재명 대표 역시 최근 비공개회의 등에서 경호처를 대통령실 소속에서 떼어내 별도 기구로 둬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8건의 개정안 중 민주당 민형배·황명선·이광희 의원안 등 4건은 경호처를 폐지하고 경호업무를 경찰청으로 이관하는 게 골자다. 경찰청에 ‘대통령경호국’ 또는 ‘국가경호국’ 등을 신설하도록 했다. 명칭만 다를 뿐 대통령 경호업무를 경찰이 담당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내용은 같다. 민·황 의원안은 대통령경호국장의 직위를 ‘치안정감’으로 정했다. 현 경호처장이 차관급인 것을 고려하면 조직의 격을 대폭 낮춘 것이다.
나머지 4개 법안은 경호처장의 경호업무에 설정된 광범위한 재량권을 제한하는 내용이다. 민주당 송재봉 의원·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안은 내란·외환 혐의로 법관이 체포·구속·압수·수색영장을 발부할 경우 해당 영장 집행은 경호처의 경호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송 의원안에는 경호처장이 헌법 및 법규에 반하는 사항이나 자신의 권한 밖 사항에 대해 지시·감독할 수 없다는 내용도 명시됐다.
민주당 한민수·윤준병 의원안은 처벌 조항을 명확화했다. 한 의원안은 경호처 직원이 현행법을 위반해 무기를 사용할 경우 10년 이하 징역이나 금고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조항을 신설했다. 윤 의원안은 현재 경호처장이 자의적으로 설정할 수 있는 경호구역을 ‘헌법과 법률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에서 경호업무 수행에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로 제한했다. 또 이를 어기는 등 직권을 남용할 경우 7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하도록 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