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플랫폼을 타고 전 세계에 전파되며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러나 콘텐츠 업계가 여러 국가를 대상으로 콘텐츠를 홍보하고 수출하는 전략을 짜면서 정작 내용을 다룰 때 문화 다양성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시즌 2가 베트남 전쟁 관련 대사로 논란이 되고 있다. 문제가 된 부분은 5화에서 해병대 출신의 참가자 강대호(강하늘)가 “아버지가 월남전 참전 용사였다”고 말하자 이를 듣고 있던 다른 참가자 박정배(이서환)가 “아버님이 훌륭하시네”라고 답하는 대목이다.
베트남에선 이 장면에 대해 “베트남전을 왜곡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었다. 라오동 등 현지 언론은 “시청자들이 넷플릭스 베트남 측에 이 장면을 검열하거나 ‘오징어 게임’ 시즌 2의 베트남 내 서비스를 중단해야 한다며 비판하고 나섰다”며 “베트남 정부가 문제의 대사 논란을 검토·평가 중이며 영화 관련 법 위반이 확인되면 법에 따라 처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국내 드라마에서 타 문화를 비하하거나 해당 국가를 섬세하지 못한 방식으로 묘사해 비난받은 건 이번만이 아니다. 이런 문제는 특히 동남아시아권이나 아랍권, 아프리카 등의 지역을 묘사할 때 집중됐다.
지난해 tvN 드라마 ‘눈물의 여왕’에선 극 중 재벌가의 아들 홍수철(곽동연)이 아프리카에 갔던 일을 회상하며 “야생과 야만성이 가득했다”고 말해 비난받았다. 넷플릭스 시리즈 ‘닭강정’은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를 비하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극 중 안재홍이 연기한 가수 옐로 팬츠가 공연을 진행하는 상황에서 비서가 “이번 공연 왕세자 내외가 볼 수 있게 티켓 2장만 빼달라고 사우디 왕실에서 연락이 왔다”고 말하자 옐로 팬츠가 “요즘 세상에 누가 그런 청탁을 다 하냐”라고 답한 부분이 문제로 지적됐다. JTBC 드라마 ‘킹더랜드’(2023)에서도 아랍 왕자로 설정된 등장인물 사미르(아누팜)가 바람둥이에 음주와 유흥을 즐기는 인물로 묘사돼 논란이 일었다.
tvN 드라마 ‘작은 아씨들’(2022)은 극 중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한국인 장군이 “한국 군인이 베트콩 병사 20명을 죽일 수 있다. 어떤 군인은 10명까지 죽였다”고 말한 대사가 문제가 돼 현지 서비스가 중단됐다. 넷플릭스 영화 ‘수리남’(2022)은 실존 국가인 수리남을 마약 밀매가 성행하는 부패한 국가로 묘사했다가 외교적 마찰을 불러올 뻔하기도 했다.
동남아시아·중동 지역에서 K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큰 만큼, 콘텐츠 제작 업체들이 현지 상황을 잘 고려하고 제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진행한 ‘2024년 해외 한류 실태조사’에선 인도네시아(86.3%), 인도(84.5%), 태국·아랍에미리트(83.0%), 베트남(82.9%) 순으로 K콘텐츠에 대한 호감도가 높게 나타났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9일 “엄청난 기술 발전을 통해 빠른 속도로 전 세계가 하나가 됐지만 사고방식의 변화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며 “어떤 문화권의 특징적인 부분을 희화화하는 경우도 여전히 있다. 대사나 설정 등에서 자로 잰듯이 객관적이고 중립적이기는 어렵겠지만 최대한 오해가 없도록 세부적인 부분에서 더욱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