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영토 팽창주의가 미국 안팎에서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7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병합을 거론한 덴마크령 그린란드와 파나마뿐 아니라 미국 내에서도 ‘신식민주의’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취임 이후 트럼프가 영토 확장 엄포를 단순히 협상 수단이 아닌 실제 정책으로 추진할 경우 국제 정치에 파장이 커질 전망이다.
트럼프는 8일 자신의 주장을 ‘먼로 독트린’에 빗대 ‘돈로(도널드와 먼로 합성어) 독트린’으로 표현한 뉴욕포스트 1면 사진을 트루스소셜에 게시했다. 해당 이미지는 트럼프가 캐나다를 ‘51번째 주’, 그린란드를 ‘우리 땅’ 등으로 표시한 지도를 가리키는 모습이다. 먼로 독트린은 미국 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가 발표한 외교정책 원칙으로, 유럽의 간섭을 금지하고 미국 패권주의를 행사하는 기반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트럼프 자신도 먼로처럼 미국의 패권을 더 강하게 밀어붙이겠다는 뜻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 안팎에서 비판이 쏟아졌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이날 프랑스 파리를 방문한 자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그린란드에 대한 생각은 좋은 생각이 아니다. 더 중요한 건 그런 일(미국 편입)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동맹을 소외시킬 수 있는 말을 하는 대신 동맹과 긴밀히 협력할 때 더 강하고 효과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블링컨 장관과 함께 기자회견에 나선 장 노엘 바로 프랑스 외무장관은 미국이 그린란드를 침공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면서도 “우리가 정글의 법칙의 시대로 돌아갔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고 말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도 “국경 불가침 원칙은 아주 작은 국가든 강력한 국가든 모든 국가에 적용된다”며 트럼프의 발언을 비판했다. 다만 덴마크는 맞대응을 자제하고 있다. 트럼프가 그린란드 매입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나선 만큼 그를 자극하지 않고 해법을 찾기 위해서다.
미국 일각에선 그린란드가 덴마크로부터 독립에 나설 경우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에 따라 트럼프의 발언이 그린란드의 지정학적 가치에 관한 토론과 중국·러시아에 대한 견제로 이어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트럼프의 파나마 운하 환수 주장에 파나마도 즉각 반발했다. 파나마 운하 청장인 리카우르테 바스케스 모랄레스는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중국이 운하를 운영한다는 (트럼프의) 비난은 근거가 없다. 중국은 운하 운영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날 트럼프는 파나마 운하를 중국이 운영하고 있다며 30억 달러의 보수 비용도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파나마 운하 청장은 운하 보수 비용을 자체 조달하고 있다며 트럼프가 주장한 30억 달러가 무슨 근거인지 알 수 없다고 반박했다.
트럼프가 ‘멕시코만’의 이름을 ‘미국만’으로 바꾸겠다고 하자 멕시코도 발끈하고 나섰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대형 스크린에 17세기 지도를 띄운 뒤 “북미 지역을 ‘멕시코 아메리카’로 바꾸는 게 어떨까. 참 듣기 좋은 이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지도에는 미국 국토 대부분에 ‘AMERICA MEXICANA’라고 표기돼 있는데, 셰인바움 대통령은 1607년 북미 대륙 명칭을 살필 수 있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이어 “17세기에도 멕시코만이라는 이름이 존재했고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으며 미국이라는 나라가 생기기 전부터 확인되는 명칭”이라고 강조했다.
CNN은 “트럼프의 21세기 신식민주의는 거대한 위험이며 국제법과 정면으로 충돌할 것이 확실해 보인다”며 “트럼프는 여러 세대에 걸쳐 구축된 동맹을 파기하고 우방을 소외시켜 미국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