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올해 역대 최대 규모의 국내 투자를 단행한다. 대부분 기업이 불확실한 경영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투자 규모를 줄이는 것과 다른 길을 택했다. 경기침체, 중국 전기차 기업의 공세,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불안정성 등 다가온 위기를 정면돌파하겠다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의지로 풀이된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국내에 24조3000억원을 투자한다고 9일 밝혔다. 지난해 투자액 20조4000억원보다 19%(3조9000억원) 늘렸다. 연간 기준 가장 많은 금액이다. 현대차그룹은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위기를 극복하고 미래성장 동력을 확보하려면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투자가 필수적이라는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정 회장은 지난 6일 신년사에서 “잘 버티자는 건 좋은 전략이 될 수 없다. 비관주의에 빠져 수세적 자세로 혁신을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연구개발(R&D)에만 투자 규모의 절반에 가까운 11조5000억원을 투입한다. 세계적으로 전기차 전환 속도가 느려진 것에 대응하기 위해 하이브리드차와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의 성능 개선에 나선다. 전기차 신차 개발도 확대한다. 현대차는 2030년까지 21종, 기아는 2027년까지 15종의 전기차 라인업을 구축할 계획이다. 자율주행을 핵심 기능으로 하는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의 페이스카(Pace car·시험차량) 개발 프로젝트를 내년까지 완료한다.
전기차 전용 공장 구축 등 경상투자에는 12조원을 투입한다. 올해 하반기에 기아 화성 에보 플랜트(EVO Plant)를 완공하고 목적기반차량(PBV) 전기차를 본격적으로 생산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건설 중인 현대차 울산 전기차 전용공장은 내년 상반기 가동이 목표다. 전기차 생산량을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혁신적인 제조공법을 도입하는 데도 소매를 걷었다. 현대차 울산공장에 하이퍼캐스팅 공장을 신설한다. 하이퍼캐스팅은 초대형 프레스 장비로 차체 등의 부품을 용접 없이 한 번에 찍어내는 공법이다. 테슬라는 2020년부터 이런 공법을 적용해 생산 속도 향상과 40% 가까운 비용 절감을 이뤄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의 이런 행보는 대체로 다른 기업들이 불확실한 경영 상황을 대처하는 방식과 차이가 있다. 지난달 한국경제인협회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올해 투자계획을 수립한 기업 39곳 가운데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기업은 5곳뿐이었다. 11곳은 투자를 줄이고, 23곳은 전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겠다고 했다.
전략투자에는 8000억원을 집행한다. 자율주행, 소프트웨어(SW), 인공지능(AI) 등 핵심 미래사업 경쟁력 확보가 목적이다. 수소 버스·트럭 개발, 수소 충전소 구축 등 수소사회 전환을 앞당기기 위한 노력도 펼친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안전하고 자유로운 이동과 평화로운 삶’이라는 인류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대내외 경영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끊임없이 체질을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