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오징어 게임과 시대적 소명

입력 2025-01-13 00:34

세계적 관심을 받는 드라마 ‘오징어 게임 시즌2’가 공개됐다. 시즌1이 받았던 엄청난 화제성이 이어지며 공개 후 11일 만에 조회 수 1억2620만회를 기록해 단숨에 역대 2위에 뛰어올랐고, 넷플릭스 역사상 최고 누적 시청 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오징어 게임’ 시리즈의 흥행 이유엔 많은 요소가 있다. 현대 자본주의의 추악한 모습을 제대로 풍자한 감독의 빼어난 연출력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K컬처에 대한 관심 속에 한국의 전통놀이가 소재로 차용되고, 이전에 보기 어려웠던 현대적 감각의 미장센과 긴장감 있는 줄거리가 매력을 더한다.

물론 찬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단언컨대 넷플릭스에서 가장 잔혹하고 폭력적인 작품이라는 비평을 받기도 한다. 특히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 ‘오징어 게임 시즌1’은 유쾌함보다 불쾌함이 큰 작품이었다. 기독교에 대한 불편한 설정과 재현 방식은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성폭력을 일삼은 목회자, 극도로 이기적 캐릭터를 가진 기독교인 등 그 묘사의 개연성이 자못 느닷없는 것이어서 황당하기도 했고, 온당치 않은 기독교 묘사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교회 성도들이 이런 불편함에만 생각이 머무는 건 ‘오징어 게임’ 시리즈를 대하는 온당한 태도가 아니다.

대중문화에는 세상을 이해하는 관점, 즉 세계관이 내재해 있다. ‘오징어 게임’ 시리즈 역시 시대를 대하는 감독의 시선과 해석,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에 대한 창작자의 제언이 들어있다. 황동혁 감독은 한국사회의 빈부 격차와 계층 격차를 잔혹하게 드러낸다. 어머니와 도박중독자인 아들이 함께 게임에 참여하고 큰 빚을 진 젊은 여성, 암호화폐에 투자했다가 거액의 손해를 본 유명 유튜버, 그가 추천한 암호화폐 투자로 돈을 잃고 게임에 참가한 마약중독자 래퍼 등 등장인물들의 서사가 이를 방증한다.

인생의 벼랑 끝에 몰린 이들이 재기를 꿈꾸며 내리는 결단은 그들을 한 공간에 모이게 한다. 그러곤 비정상적인 행운을 담보로 목숨 건 게임에 참여한다. 하나의 게임이 끝날 때마다 ‘X(게임 중단을 원하는 쪽)’와 ‘O(게임을 계속하자는 쪽)’ 극단으로 나뉜 양 진영의 모습은 정치 문화 이념 등에 있어서 일촉즉발의 갈등과 극단의 긴장으로 치닫고 있는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다.

이런 디스토피아적 세상에 감독이 등판시킨 성기훈이란 캐릭터에 우리는 주목하게 된다. 그는 빚더미에 오른 참가자 수백 명이 엄청난 상금을 얻고자 목숨을 걸게 하는 게임을 기획한 ‘프론트 맨’을 찾아 이 파국의 게임을 궁극적으로 멈추려는 사투를 벌인다. 우리의 문제가 개인의 문제로만 치환할 수 없는 시스템의 문제라는 점을 알고 그 틀을 부수려는 주인공의 처절한 분투는 비현실적인 저항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시청자들은 회차를 거듭할수록, 기훈과 함께 싸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주인공 기훈을 보며 시선을 안으로 돌려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를 바라본다. 우리는 ‘오징어 게임’ 같은 극단의 현실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물질주의 논리로 가득 찬 이 시대 속에서, 우리 공동체가 직면한 여러 가지 난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각자도생의 사회, 소통하지 못하고 서로의 생각과 존재마저도 불법화하는 ‘OX 사회’와도 같은 이 극단의 땅을 치유하기 위한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시대적 소명을 생각해 본다.

주인공 기훈처럼, 이 희망 없는 게임의 규칙이 아닌 새로운 규칙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삶으로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물질을 향한 투쟁이 아닌 서로 나눔과 돌봄으로, 적대가 아닌 환대의 공동체로, 갈등을 넘어 그리스도의 생명과 평화를 우리의 삶으로 발신하는 그리스도인과 교회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백광훈 문화선교연구원 원장

△문화선교연구원장 △을지대 교목 △‘한국교회 트렌드 2023·2024’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의 마을목회와 교회 건물의 공공성’ 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