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작은 점이 모여 그림이 완성된다

입력 2025-01-11 03:04

지난 12일 ‘주의 세례 주일(Baptism of the Lord)’을 시작으로 교회력의 연중(年中) 시기가 시작됐다. 연중 시기는 특별한 절기(대림 성탄 사순 부활)를 제외한 33주에서 34주간의 시기이다. 연중 시기를 상징하는 색은 녹색으로 이 주간 성찬례(예배) 제의는 녹색으로 입는다.

녹색은 생명 희망 영생을 상징한다. 겨울 산천의 빛깔은 어둡지만 연중 산천은 푸르른 녹색을 품고 있다. 우리의 삶도 특별한 색을 띠는 날도 있지만 대부분이 이 녹색 같은 일상을 살아간다. 붉은 노을과 같은 특별한 날은 기억하기 쉽다. 하지만 일상의 색인 녹색을 기억하기란 쉽지 않다. 분명 서해의 아름다운 노을빛과 같은 특별한 빛을 기억하지만 일상의 푸르름은 우리를 성장시킨다. 그래서 이 연중 시기를 어떻게 보내는가는 신앙생활에서 중요하다.

우리는 지금 일상을 제대로 살아갈 수 없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 평범했던 일상이 그립거나 다가올 날의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푸르른 숲의 나무와 같이 성장해야 하는 시기를 보내라 하시는데 지금 우리는 왜 푸르른 숲을 살지 못하고 있는가.

그에 대한 답을 나에게 묻는다. 그런데 눈물이 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금의 나를 바라봐야 하므로, 이 몇 자의 글이 세상을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릴 수 없는 ‘작은 점’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렇다. 그런데도 이런 나에게 예수님은 다시 작은 점을 그리게 하신다.

이 작은 점을 신앙적 언어로는 소명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복음을 전하고 기도하는 행위로, 다른 이에게는 촛불을 들고 거리에서, 어떤 이는 자녀의 밥상을 차려 주는 손길에서, 또 다른 누군가는 작은 교회에서 봉사로써 각자 소명의 작은 점들이 모여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를 그려 완성하게 한다.

주님께서는 예언자 이사야의 말씀을 통해 우리 각자의 소명이 다름에 대해 말씀하신다. 이 다름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다르다고 해서 어떤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없고, 작다고 해서 소중하지 않다고 말할 수도 없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같을 수 없는 각자의 소명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자신의 소명 또한 소중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이는 자신의 소명을 하찮은 것으로 치부하고 무시한다. 하지만 단언컨대 이 세상에 하찮은 소명이란 없다. 그림에서 필요 없는 ‘점’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예수님의 소명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며 아버지의 뜻을 세상에 알리는 일, 바로 전도였다. 그분은 왜 전도를 하셔야만 했을까. 바다의 모래를 가지고도 새로운 민족을 만드실 수 있는 하나님이 왜 사랑하는 아들을 직접 보내어 전도하게 하셨을까.

그 이유는 분명하다. 바로 사랑 때문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셔서 우리를 포기하지 못하셨다. 그 분명한 사랑 하심으로 묵묵히 당신의 길을 걸어가셨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지금 그 분명함을 가지고 주님을 전하고 있는가. 우리에게 이 분명함이 있다면 어떤 어려움이나 슬픔도,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저 높은 벽도 결코 우리의 소명을 다함에 있어 장애가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도 묵묵히 일상 가운데, 두려움 없이 하나님 나라의 그림에 나의 점을 찍어 완성해 나아가자.

◇성범용 사제는 2009년 성공회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현재 대한성공회 안중교회를 담당하고 있다. 경기도 평택에 있는 교회는 91년간 안중 지역에서 아름다운 신앙의 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성범용 사제(대한성공회 안중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