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화 된 ‘초고령 서울시’… 어르신 모시는 기초단체들

입력 2025-01-13 01:03
효도밥상 대흥동 1호점에서 지난해 1월 노인들이 점심을 먹고 있다. 마포구는 소득과 상관없이 75세 이상 구민에게 월~토요일 무료로 점심을 제공하는 ‘효도밥상’을 운영하고 있다. 마포구 제공

서울시와 각 자치구가 ‘노심(老心)’을 사로잡기 위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무료 식사 대접부터 혼자 사는 노인을 위한 단체 미팅 주선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한국은 지난달 23일 65세 이상 인구가 주민등록인구의 20%를 차지하는 초고령 사회가 됐다. 서울도 노인 인구 비중이 2022년 17.58%, 2023년 18.46%, 지난해 19.44%로 매해 가파르게 늘어나며 오는 7월쯤 20%가 넘을 전망이다. ‘초고령 서울’은 현실화됐다. 그만큼 노인 정책의 중요성이 커진 것이다.

75세 이상, 소득 상관없이 무료 식사

마포구는 소득과 상관없이 75세 이상 구민에게 월~토요일 무료로 점심을 제공하는 ‘효도밥상’을 운영하고 있다. 식사를 원하면 아현노인복지센터, 우리마포복지관 등 마포구 내 44개 기관을 찾으면 된다. 매일 약 1500명이 혜택을 받고 있다.

효도밥상은 식사만 대접하는 사업이 아니다. 건강·법률·세무 상담까지 제공하는 원스톱 복지 서비스다. 행정복지센터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은 주 2~3회 식사하러 온 이들의 혈압과 당뇨 유무를 봐준다. 법률·세무 상담을 원하는 사람들은 관련 분야 전문가를 만날 수 있다.

구청은 갑자기 식사를 거르는 이들의 안부도 확인한다. 효도밥상 정책이 자연스럽게 고독사 예방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마포구 관계자는 “지난해 매일 효도밥상을 이용하던 어르신 한 분이 보이지 않고 연락도 안 돼 직원이 어르신의 집을 찾아간 적이 있다”며 “가보니 쓰러져 계셨고, 응급조치를 통해 목숨을 살렸다”고 말했다.

효도밥상 반찬공장도 지난해 4월 망원동에 문을 열었다. 식사를 제공하는 각 기관에 매일 반찬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연면적 246.19㎡(약 74평) 규모인 반찬공장에선 매일 1500인분의 반찬이 조리된다. 효도밥상에 대한 반응은 뜨겁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3월 강원도 원주에서 개최된 민생토론회에서 효도밥상을 우수 행정 사례로 언급했다. 타 지방자치단체, 학술기관 등이 효도밥상 정책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마포구를 찾은 사례가 지난해 11월까지 105건에 달한다고 한다.

영등포구는 65세 이상 구민에게 ‘키오스크(무인 자동화 주문 기계)’ 사용법을 교육하는 ‘디지털 실전 밥상’ 정책을 시행 중이다. 최근 패스트푸드 매장을 중심으로 식당에서 키오스크를 이용해 주문을 받는 경우가 급격히 늘었다. 영등포구의 정책은 노인층의 ‘디지털 격차’를 줄여주겠다는 의도로 큰 관심을 모았다.

지난해 디지털 실전 밥상은 전문강사가 10~11월 43개 경로당을 순회하며 1100여명을 교육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식당을 찾아 키오스크를 직접 사용하는 실습도 병행했다. 새해엔 디지털 실전 밥상을 130여개 경로당에서 3100여명을 대상으로 확대해 실시한다.

노인 이동권 보장도 활발

정문헌 종로구청장이 지난해 5월 지역 노인이 어르신 돌봄카에서 내리는 것을 돕고 있는 모습. 종로구 제공

노인 이동권을 지원하기 위한 사업도 활발하다. 중구는 서울 자치구 중 최초로 65세 이상 구민에게 택시, 버스 이용비를 월 4만원 한도 내에서 지급하는 ‘어르신 교통비 지원’을 2023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중구는 마을버스가 닿지 않는 오르막길이 많은 곳이다.

구에 따르면 지금까지 2만여명이 교통비를 지원받았다. 이용객 1975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진행한 설문 조사 결과 70.9%가 외출 빈도가 늘었다고 답했고, 97.8%가 생활 변화를 느낀다고 응답했다. 중구 관계자는 “이 사업은 어르신들이 사회 활동을 늘리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종로구는 65세 이상 구민을 대상으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어르신 돌봄카’를 무료 운영 중이다. SUV 차량인 돌봄카는 골목과 언덕이 많아 대중교통이 부족한 창신동, 이화동 등을 다닌다. 매일 약 170명이 돌봄카를 이용한다. 종로구 관계자는 “택시도 접근을 꺼릴 정도로 길이 험한 지역이라 돌봄카 수요가 높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어르신판 나는 솔로’까지

여가활동을 지원하는 데 힘쓰는 자치구도 있다. 종로구는 지난해 10월 운현궁에서 65세 이상 구민을 대상으로 ‘어르신판 나는 솔로’인 ‘종로 굿라이프 챌린지’를 개최했다. 혼자 살고 있는 노인들에게 새로운 짝을 찾아주기 위해 기획된 이 행사에는 남녀 34명이 참여했다. 참가자의 평균 연령은 75세였다.

행사는 자기소개, 그룹 대화 및 일대일 자유 대화, 레크리에이션, 매칭타임 순으로 진행됐고, 6쌍의 커플이 탄생했다. 종로구는 올해 봄과 가을 두 차례 굿 라이프 챌린지를 진행할 예정이다.

은평구는 불광천변에 바둑방과 장기방을 갖춘 198㎡(60평) 규모의 ‘은평춘당’을 2020년 7월부터 운영 중이다. 이전에는 불광천변 땅바닥에서 바둑·장기판이 벌어졌었는데, 구청에서 아예 건물을 세워 ‘놀 곳’을 만들어준 것이다. 65세 이상 구민은 무료로 은평춘당을 이용할 수 있으며, 매년 3만8000여명이 다녀갈 정도로 인기가 많다.

도봉구는 2023년부터 매해 65세 이상만 무대에 오를 수 있는 ‘어르신 노래자랑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가수들의 공연을 관람하는 것만 아니라, 직접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며 구민들이 삶의 활력을 되찾을 수 있도록 기획된 행사다.

매 대회마다 수백명이 예선에 참여하고, 12팀이 참여하는 본선 무대를 찾는 관람객은 약 500명에 이른다. 행사에선 트로트 가수 공연, 경품 추천 등 다양한 부대 행사도 진행된다.

김용헌 기자 y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