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다시 쓰기… 현대적 재창작이 흥미로운 공연 3편

입력 2025-01-11 03:29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21세기 노동자 계급 10대 이야기로 재창작한 연극 '로미오 앤 줄리'. 엠비제트컴퍼니 제공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운명적이고 비극적인 사랑의 대명사다. 원수 집안의 두 남녀가 불같은 사랑에 빠지지만, 결국 안타까운 죽음을 맞는 이야기는 오랜 세월 끊임없이 변주됐다. 올겨울 화제작인 연극 ‘로미오 앤 줄리’(~3월 16일 대학로 예스24아트원 2관)는 원작의 16세기 이탈리아 베로나 명문 가문 출신의 두 연인 이야기를 21세기 영국 웨일스 지역 노동자 계급 출신 10대 이야기로 바꿔놓았다. 영국 극작가 게리 오웬이 지난 2023년 영국 런던 내셔널시어터(NT)에서 선보인 최신작으로, 한국 초연의 연출은 부새롬이 맡았다.

작품 속 배경인 웨일스는 영국에서 낙후된 지역으로 인식되는 곳이다. 알코올 중독자 엄마의 무관심 속에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않았던 18세 로미오는 원나잇 스탠드로 생긴 아이를 양육하는 싱글 대디다. 반면 천체물리학자가 꿈인 동갑내기 줄리는 부모의 헌신 속에 학교에서 뛰어난 성적을 받아 영국 최고 명문 케임브리지대 입학 허가를 받는다.

너무나도 다른 상황 속에 놓인 두 사람은 우연히 카페에서 만난다. 봉사점수를 따기 위해 베이비시터를 자원했던 줄리는 로미오와 사랑에 빠져 임신을 하게 된다. 쫓겨나다시피 집을 나온 줄리는 로미오 엄마의 집에 얹혀살면서 웨일스의 지방 대학에 진학해 육아와 공부를 병행하려고 한다. 하지만 줄리는 꿈을 포기하기 어렵고, 로미오는 자신의 현실을 절감하게 된다.

셰익스피어 원작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낭만성에 가려져 있지만 두 연인의 사랑은 성급하고 무모하다. 그런 두 연인의 앞에 현실이라는 장벽을 놓은 ‘로미오 앤 줄리’는 낭만 대신 책임의 문제를 현실적으로 다룬다.

셰익스피어 작품들은 삶을 꿰뚫는 통찰력으로 지금도 전 세계에서 끊임없이 공연되고 있다. 다양한 해석과 변주가 가능한 것도 셰익스피어가 지속적인 생명력을 갖는 이유다. 특히 요즘엔 셰익스피어 원작 희곡을 토대로 재창작한 작품들도 매우 많이 나오고 있다. 올겨울 대학로에서 개막한 ‘로미오 앤 줄리’를 비롯해 ‘스타크로스드’(~3월 2일 예스24 스테이지3관)와 ‘오셀로의 재심’(~26일 SA홀) 등 3편이 여기에 해당한다.

'로미오와 줄리엣' 속 티볼트와 머큐쇼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연극 '스타크로스드'. 달컴퍼니 제공

‘스타크로스드’는 영국 극작가 레이첼 가넷이 2022년 런던에서 초연된 작품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을 토대로 재창작했다. 제목인 ‘STAR-CROSSED’는 ‘엇갈려 떨어지는 별을 함께 본 연인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난다’는 의미가 담긴 단어로, 셰익스피어가 ‘로미오와 줄리엣’ 서문에 사용하며 대중적이 됐다.

이 작품은 줄리엣의 사촌인 캐퓰렛 가문의 충실한 오른팔 티볼트와 베로나 영주의 친척이자 몬테규 가문 로미오의 친구 머큐쇼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원작에서 티볼트가 광장에서 머큐쇼를 죽이고, 이에 분노한 로미오는 티볼트를 죽인다. 원작의 스핀오프(파생작) 격인 ‘스타크로스드’는 티볼트와 머큐쇼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둘이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다뤘다. 이 작품은 거장 극작가 톰 스토파드가 햄릿의 친구들을 주인공으로 재창작한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은 죽었다’(1966)와 같은 깊이를 느끼기는 어렵다. 하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의 주요 장면들과 대사들이 인용되는 한편 배우들의 애드립이 어우러져 새로운 재미를 준다.


뮤지컬 ‘오셀로의 재심’(포스터)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를 현대적으로 재창작한 작품이다. 원작에서 용맹한 장군 오셀로는 이아고의 간계에 넘어가 정숙한 아내 데스데모나의 부정을 의심한 끝에 살해한다. 뮤지컬 ‘인당수 사랑가’ 등의 박새봄 작가가 쓴 ‘오셀로의 재심’은 오셀로가 신화 속 복수의 여신들이 주관하는 특별법정에서 재심을 받는다는 독창적인 설정을 넣었다.

원작 속 인물들이 법정에 차례차례 등장하는 가운데 데스데모나가 처음으로 자신의 비극에 대해 직접 입을 연다. 피해자가 직접 판결하는 특별법정에서 데스데모나가 오셀로에게 내리는 판결이 흥미롭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