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GDP 킬러

입력 2025-01-10 00:37

해가 바뀌면서 하나둘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을 쏟아내고 있다. 정부는 지난 2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8%로 내놨다. 잠재성장률(2.0%)을 밑돌 뿐 아니라 한국은행이 지난 11월 말 내놓은 1.9%보다도 0.1% 포인트 낮은 수치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한국 경제 상황을 더 어둡게 봤다. 지난달 말 글로벌 IB 8곳이 제시한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 평균은 1.7%였다. 불과 한 달 전 전망치 1.8%에서 이 역시 0.1% 포인트 떨어졌다. JP모건의 경우 1.7%에서 1.3%로 무려 0.4% 포인트나 낮춰 잡았다.

전망치라는 것이 불확실성과 변수의 합이다 보니 저마다 값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불과 한 달여 사이를 두고 가뜩이나 좋지 않던 전망치가 더 나빠졌다는 것이다. 해외 주요국들의 올 성장률 전망치는 대부분 한 달 전보다 상승했거나 변동 없이 유지됐다.

여러 이유가 상존하겠지만, 12·3 비상계엄으로 시작된 국내 정세 불안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도 하다.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계엄을 ‘GDP 킬러’라고 표현했고, “이기적인 계엄령 도박의 대가는 한국의 5100만 국민이 할부로 지불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앞서 이창용 한은 총재도 지난달 18일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설명회에서 비상계엄 사태 여파로 24년도 4분기 경제성장률이 기존 전망인 0.5%에서 0.4%로 0.1% 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비상계엄 사태 5일 전 발표했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고쳐 잡을 가능성이 있다.

혹자는 1.9%나 1.8%나 1.8%나 1.7%나 별 차이 없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0.1% 포인트의 차이는 단순한 숫자 차이 그 이상을 의미한다. 흔히 우리가 경제성장률로 표현하지만, 정확히는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다. 올해 성장률이 2%라면 실질 GDP 총액이 지난해보다 2% 늘었다는 걸 뜻한다. GDP는 국토 안에서 일정 기간 새롭게 생산되는 재화와 서비스의 시장 가치를 모두 더한 값이다. 2023년 기준 우리나라 실질 GDP가 2243조2204억원이었던 걸 고려하면 0.1% 포인트 둔화는 2조2432억원의 증발을 뜻한다. 숫자가 담지 못한 무형의 경제적, 사회적, 외교적 손실까지 더한다면 계엄의 비용은 더 커진다.

일정 수준의 경제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해선 대외 경제 부문의 꾸준한 성장세가 유지돼야 하고, 거기에 내수가 뒷받침돼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암울하다. 최근 발표되는 거의 모든 경제지표가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다. 소비심리는 위축됐고 내수는 침체됐다. 계엄 사태 이후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1480원대 중반까지 치솟으며 금융위기인 2009년 3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경기 하방 위험’을 경고하고 나섰다. 곧 날아올 2차 청구서는 경제성장률 추가 하향 조정과 대외신인도 하락이 될지도 모른다.

국민 모두 힘들다고 하는데 정작 위정자들에겐 들리지 않나 보다.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제 전복을 노리는 반국가세력의 준동으로부터 국민의 자유와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했다. 야당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하면서 꺼낸 것도 “국민 명령에 따라”였다. 너도나도 국민을 내세웠지만, 정작 국민은 “뭔 소리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취재 중 만난 한 자영업자는 “누가 계엄을 원했냐. 탄핵을 원했냐”며 “우리가 원하는 건 안정”이라고 말했다.

황인호 경제부 기자 inhovator@kmib.co.kr